지난달 영남 지역을 휩쓴 대형 산불은 국가유산에도 처참한 피해를 입혔다. ‘천년 고찰’ 의성 고운사의 보물 연수전과 가운루가 잿더미가 됐다. 수백 년 역사의 고택들도 화마에 무너져 내렸다.
16일 기준 국가유산 피해는 총 35건. 그 와중에 한때 소실됐다고 알려진 안동 만휴정이 무사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방염포의 기적’이라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방염포는 불꽃에 닿아도 일정 넓이 이상으로 불이 번지지 않도록 처리한 천이다. 건물 기둥과 하단에 도포한 천이 기적적으로 정자를 지켜냈다는 것이다.
정말 그랬다면 국가유산청을 칭찬할 일이다.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소방 방재 전문가들은 “과도한 침소봉대”라고 말한다. 불쏘시개가 될 주변 잡목을 제거했고, 인근 원림에도 물을 뿌린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현장에 투입된 방염포의 성능을 알 수 없고, 도포 방법도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김동현 전주대 소방안전공학과 교수는 “방염포는 재질, 두께, 성분 구성비에 따라 효과도 천차만별이다. 적어도 난연 2급을 썼어야 하고, 만휴정처럼 지붕 아래 서까래가 다 드러나게 붙이면 효과가 없다”고 했다.
현장에선 우왕좌왕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상황이 급박했다. 시중에 판매하는 업체에서 5000만원어치를 구매해 의성, 안동, 산청 등에 내려보냈다. 몇 급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현장에 투입된 문화유산돌봄센터 관계자는 “설치 방법을 몰라서 건물 기둥을 이용해 철사로 천을 묶듯 연결했더니 너무 헐거웠다”고 했다. 건물마다 부착 상태도 제각각이었다. 어떤 방염포를 어떻게 설치해야 하는지, 기준도 매뉴얼도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유산청 홈페이지에는 ‘산불 재난 위기 대응 실무 매뉴얼’이란 자료가 떠 있다. 관련 부처·기관 담당자를 대상으로 지난해 7월 만든 것이다. 예컨대 ‘언론 대응’에는 이런 매뉴얼을 제시했다. “국가유산 피해 및 대응 상황에 대해 선제적인 보도 자료를 작성하고, 홍보를 통해 부정적인 언론 보도를 최소화한다.” 정작 산불 현장에 필요한 방염포 설치법이나 잡목 제거 같은 지침은 그 안에 없었다.
2005년 강원 양양에서 발생한 산불로 낙산사 동종이 녹아내린 지 20년 지났다. 국가유산청은 2017년부터 매년 외부에 용역을 주고 국보·보물·사적 등 ‘국가유산 방재 환경 모니터링’을 해왔다. 한 해 사업비만 2억2700만원. 지난 2022년 보고서에서 조사팀은 의성 고운사 연수전에 대해 “산중에 위치한 사찰로 산불 화재 시 피해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작년에도 “방재 설비 설치, 유지·관리 상태 모두 미흡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썼다. 하지만 아무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고 연수전은 결국 잿더미가 됐다. 무엇을 위한 모니터링이었을까.
전문가들은 이번 산불을 계기로 방재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문제점을 철저히 복기하고 대응 매뉴얼을 갖춰 놓지 않으면 ‘눈 뜨고 보물 잃는’ 참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