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마존'으로 불리는 국내 1위 온라인 유통 업체 쿠팡이 한국 기업 최초로 뉴욕 증권거래소 상장 절차에 착수했다. 한국 대신 미국 증시에 주식을 상장하겠다는 것이다. 쿠팡의 사업 무대는 한국이지만 미국 법인(쿠팡INC)이 한국 쿠팡의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단지 미국 기업의 자회사라는 이유만으로 미 증시를 선택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에선 쿠팡 같은 만년 적자기업의 상장이 사실상 어렵다. 쿠팡은 혁신적 배송 시스템으로 급성장하고 있지만 창업 이래 10년간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해 누적 적자가 4조원대에 이른다. 반면 미국 증시는 아마존·테슬라의 경우처럼 미래 전망이 좋으면 적자 기업이라도 폭넓게 상장 기회를 주고 있다.
경영권 방어 수단도 천양지차다. 쿠팡은 뉴욕증시 상장을 신청하면서 창업자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의 보유 주식에 보통주 29배의 ‘차등의결권’을 부여했다고 밝혔다. 창업자가 지분 2%만 있어도 58%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해 확실한 경영권 방어 수단을 준 것이다. 반면 국내 상법은 이런 차등의결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사위원 선임 등 주요 의사결정 때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며 역차별한다. 게다가 상장 기업 공모주의 20%를 우리사주에 배정토록 강제하고 있다. 쿠팡이 국내 증시에 상장한다면 최대 11조원어치 주식을 우리사주 조합에 떼줘야 하는 것이다. 이런데 왜 국내에 상장하려 하겠는가.
쿠팡은 뉴욕증시 상장 신청서에 “(사업장 소재지인) 한국 법규의 적용을 받음에 따라 비용과 벌칙을 부과받을 수 있다”는 점을 ‘리스크 항목‘으로 명시했다. 한국에서 사업하는 것 자체가 잠재적 리스크라는 것이다. 기업 활동과 경영권을 제약하는 규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유망 기업들이 한국 증시를 떠나 해외 상장하는 사례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