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미북 대화가 ‘판문점과 싱가포르 선언 등을 기초로 한다’는 원칙적 동의를 얻어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만, 쿼드, 남중국해, 첨단 기술 등 중국 견제에 필요한 한국 참여를 확보했다. 특히 “대만 해협 평화” 언급은 한·중 수교 이후 한미 성명에서 처음 명시됐다. 양측 모두 가장 원했던 것을 절충해 얻은 것이다. 서로 양보해 이견을 줄일수록 동맹은 강화된다.

정부는 공동성명에서 ‘판문점·싱가포르 선언'을 언급한 것을 두고 “최대 성과”라고 했다. 그런데 북이 가장 원하는 제재 해제에 대해 공동성명은 “유엔 안보리 결의 완전 이행”이라고 못 박았다. 북이 비핵화 조치를 안 하면 제재 해제도 없다는 뜻이다. 김정은이 바라는 미북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바이든은 “김정은의 핵무기고에 대한 논의 약속이 없으면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트럼프 같은 ‘TV 쇼’는 없다는 것이다. 바이든은 “북 비핵화에 대한 어떤 환상도 없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북이 싫어하는 “북 인권 개선”까지 공동성명에 명시했다. 두 달 전 한미 외교·국방 회담 때만 해도 없던 내용이다. 비핵화 대화를 위한 공은 북으로 넘어갔다.

미국은 한국군 55만명에게 접종할 백신 공급을 확약했다. 그동안 문 정부는 한미 연합 훈련을 안 하는 핵심 이유로 ‘코로나 감염’을 거론해왔다. 백신 제공은 ‘코로나 핑계 그만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미국은 42년 만에 ‘미사일 사거리 족쇄’도 완전히 풀어줬다. 동맹 억지력을 강화하려는 조치다. 바이든은 문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중공군과 혈투를 벌였던 6·25 영웅에게 최고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한미 동맹의 ‘뿌리’를 생각하게 한다.

지금껏 문 정부는 중국이 원하는 건 다 들어줬다. ‘쿼드’는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라고 했고 미국 중심의 경제 공급망 구축에도 부정적이었다. 미사일 방어망 불참 등 ‘사드 3불(不)’로 군사 주권까지 양보했다. 중국의 남중국해 팽창과 홍콩·위구르족 인권 탄압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다 이번엔 미국에 “쿼드 중요성 인식” “남중국해 항행 자유 존중” “해외 인권·민주화 증진”을 약속했다. 반도체·배터리·5G 등에서도 “미국과 협력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중국이 호주에 보복한 원인이던 ‘코로나 기원 연구’까지 공동성명에 담았다. 중국에 기울었던 지난 4년간의 태도를 바꿔 이번엔 미국이 원하는 것을 대폭 들어줬다.

그러자 민주당 의원이 소셜미디어에 “문 대통령 귀국 길에 중국 측에 한미 회담 내용을 설명해주면 좋을 것”이라고 썼다. 주권국가의 여당 의원이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하나. 식약처 공무원이 “한국은 속국, 중국은 대국”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문 정권의 대중 저자세가 일선 공무원과 여당 의원까지 번진 것이다.

외교에서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편들 수는 없다. 그렇다고 미국에 이 말 하고, 중국에 저 말 하는 식으로 오락가락해선 국가 신뢰도가 무너진다. 상대에 따라 말이 달라지는 것을 ‘균형 외교’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가 지난 70년간 북의 위협을 막아내며 기적 같은 경제 번영을 이뤄낸 바탕은 한미 동맹이다. 동맹의 가치는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한미 공동성명은 “한미 동맹 새로운 장을 연다”고 명시했다. 그러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