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내년도 코로나 백신 예산 증액과 관련, “백신이 남아돌지언정 초반부터 많은 물량을 확보하는 충분한 예산이 배정돼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청와대 수석이 밝혔다. 당초 1조5000억원이던 백신 예산을 2조5000억원으로 늘린 건 “백신 확보는 기존의 관점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대통령 지시 때문이란 설명이다. 남아돌 정도의 백신 확보는 상식이다. 그래서 다른 선진국들은 지난해 서둘러 백신 확보 경쟁을 벌인 것이다. 백신마다 효과·안전성·유통 조건이 제각각인 걸 감안해 선구매 방식으로 여러 종의 백신을 인구의 몇 배씩 확보했다.
그런데 문 정부는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백신 계약을 미적거렸다. 관계 부처들은 선구매 금액을 떼이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시간을 끌었다. 백신을 확보하지 못해 놓고 국민에겐 “남들 먼저 맞는 거 보고 접종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자기 합리화를 했다. 작년 말 선진국들이 백신을 싹쓸이해 턱없이 부족해지자 문 대통령은 “그동안 백신 확보를 여러 차례 지시했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참모들을 질책했다. “백신 수급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사람을 청와대 방역기획관에 앉히기도 했다. 그 사이 한국의 백신 접종률은 OECD 최하위권이 됐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사과 한마디 없이 이제야 ‘남아돌지언정 백신 확보’를 지시했다. 이 말은 1년 전에 했어야 할 말이다.
늦은 백신 확보는 델타 변이 확산과 겹치면서 많은 국민들에게 타격을 주고 있다. 지금 코로나 확진자가 연일 2000명 안팎 쏟아지면서 중증 환자용 병상이 빠르게 바닥나고 있다. 인공 호흡기, 음압 격리 등을 갖춘 병상이 있어야 중증 환자를 살릴 수 있다. 그런데 22일 기준 대전은 동이 났고 충남과 세종은 1개만 남은 상황이다. 준(準)중증 병상도 경북 등에서 한계에 달했다. 게다가 의료진은 1년 넘게 강행군을 이어 오느라 탈진 직전이다. 제때 백신 확보를 했으면 몇 달 전에 벗어났을 상황이다.
정부는 22일 ‘모더나 백신 700만회분이 향후 2주간 공급된다’고 발표했다. 모더나 백신은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4000만회분을 구했다는 제품인데도 지금까지 들어온 건 6.1%에 불과하다. 루마니아가 난데없이 45만회분을 ‘백신 스와프’로 준다고 한다. 이것도 ‘백신 외교’의 승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