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벌어진 층간 소음 흉기 난동 사건은 대한민국 경찰의 존립 이유를 묻고 있다. 범죄를 방치하고, 범행 현장에서 도망치고, 범인 제압을 회피한 경찰이 국민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경찰법이 규정한 경찰의 3대 임무는 국민의 생명·신체·재산 보호, 범죄 예방과 진압, 범죄 피해자 보호다. 지난 15일 범죄 현장에서 경찰은 3대 임무를 모두 저버렸다.
피해자 가족이 청와대 인터넷에 올린 청원 내용은 기가 막힐 정도다. 가해자가 칼부림 난동을 부릴 때 함께 있던 경찰관은 아무 대응을 하지 않았다. 칼에 찔려 피를 쏟던 피해 여성을 내버려두고 소리를 지르며 현장에서 뛰쳐나갔다. 피해자는 지금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한다. 현장에 있던 피해자 딸도 범인이 휘두른 흉기에 다쳤다. 자리를 뜬 경찰은 피해자 가족에게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내려갔다”며 “최선의 구호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말이라고 하나. 무전기는 장식품인가. 삼단봉과 테이저건은 왜 갖고 출동했나. 그가 현장을 떠난 사이 피해자 딸이 홀로 맨손으로 범인을 막았다.
이 경찰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경 자질’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는 본질이 아니다. 함께 출동한 남성 경찰 역시 밖에서 피해자 비명 소리를 듣고도 즉시 달려가지 않았다. 함께 있던 피해자 남편이 “빨리 가자”고 했는데도 동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성 경찰은 삼단봉과 함께 실탄이 든 권총도 가지고 있었다. 결국 현장에 달려간 남편이 범인에게서 빼앗은 칼의 칼날을 쥐고 칼자루로 범인 머리를 내려쳐 기절시킨 뒤에야 범행이 끝났다. 그제서야 경찰이 현장에 나타나 테이저건을 발사하고 수갑을 채웠다고 한다.
논란이 벌어지자 경찰은 “시민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은 인천 경찰의 소극적이고 미흡한 사건 대응에 사과 드린다”며 관할 경찰서장을 직위 해제했다. 사과조차 한심하다. 국민이 지급한 무기로 범죄를 막아 달라는 게 ‘시민 눈높이’인가. 그러면 범인에게 피해자를 맡겨 놓고 현장에서 도망치는 게 ‘경찰 눈높이’란 말인가. 게다가 당시 출동한 경찰관은 직무유기에 항의한 피해자 가족에게 “경찰의 신고가 빨랐기 때문에 구조가 빨라서 돌아가시지 않은 것만으로 위안을 삼으라”고 했다고 한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말이지만 경찰은 지금껏 아무 해명도 못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