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제재 조치로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기로 결정하면서 국제 유가가 급등했다. 8일(현지 시각)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는 배럴당 123.70달러에 거래돼 2008년 8월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는 장중에 배럴당 130달러를 넘기도 했다. 국내에서 많이 수입하는 두바이유도 배럴당 120달러대로 급등했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고 에너지 시장에 장기적이고 거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쏟아진다. 올 연말까지 국제 유가가 배럴당 175~185달러까지 치솟을 수도 있다는 예측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국제 유가 상승은 에너지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치명타가 된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물가는 전방위로 상승 압력을 받는다. 기업도 원가 부담이 늘어나면서 수익이 쪼그라든다. 일파만파로 가계 소득에도 영향을 미쳐 투자와 소비가 동시다발로 위축된다. 1970년대 오일 쇼크 상황이 그랬다.

가뜩이나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 마구 풀린 돈 때문에 소비자물가가 10년 만에 처음으로 5개월 연속 3%대 상승률을 보였다. 지금 같은 고유가가 지속된다면 물가 상승률이 4%대로 높아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이미 국내 기름값은 연일 상승해 7년 반 만에 최고치다. 서울, 제주 등의 휘발유 가격은 ℓ당 1900원대로 올라섰다.

그동안 수출 호조로 버텨왔는데 고유가로 에너지 수입액이 급증하면 무역 수지 역시 악화된다. 만약 러시아의 디폴트(채무불이행)까지 현실화한다면 러시아와 무역 관계에 있는 국내 기업이나 금융시장이 입게 될 타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 모든 악재가 한꺼번에 닥치면 당초 예상했던 올해 3.1% 성장도 쉽지 않다. 한국을 둘러싼 국제 경제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는 상황을 반영하듯 8일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9.9원 오른 1237원에 거래됐다. 환율이 1230대로 오른 것은 1년 9개월 만이다.

그동안 수출 호조로 간신히 버텨왔는데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경기 침체 속에 물가만 급등해 국민들 삶을 더 어렵게 만드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져들 우려도 점점 커진다. 한국 경제에 먹구름이 몰려오는데도 여야는 돈 퍼주는 대선 공약만 앞다투어 쏟아냈다. 이제 새 대통령 당선인은 한국 경제를 둘러싼 이 시계 제로의 엄중한 현실을 당장 직시하고 한시바삐 대응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