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신임 총재가 지난 21일 오후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2022.4.21/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신임 한국은행 총재가 취임식에서 “과거같이 정부가 산업 정책을 짜고 모두가 밤새워 일한다고 경제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 정부 아닌 민간 주도, 양적 팽창 아닌 질적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경제가 더 도약할지 아니면 장기 저성장에 빠질지 예측하기 어려운 시기”라며 “대전환의 기로”라고 했다. 이 총재는 약 13분의 취임사에서 ‘물가’는 3번 말한 반면 ‘성장’은 7번 언급했다. 물가 방어가 주 임무인 한국은행조차 우려할 만큼 성장 부진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한국 경제가 구조적 저성장에 빠진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0년대 초 연 4.7%에 이르던 잠재 성장률(인플레를 야기하지 않고 달성 가능한 최적 성장률)이 2016~2020년에 연 2.5%로 반 토막 났다. 세계 최악의 고령화·저출산 속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추세라면 2030년 이후 1인당 잠재 GDP 성장률이 연평균 0.8%로 하락해 OECD 38국 중 꼴찌가 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있다.

성장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려면 비효율을 초래하는 각 부문의 구조 개혁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밖에 없다. 몸에 좋지만 입에는 쓴 약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5년은 그 정반대로만 했다. 민노총을 위시한 강성 노조를 법 위에 군림하는 무법 세력으로 만들고, 급격한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각종 반기업 정책으로 민간의 일자리 창출 역량 자체가 줄어들었다. 그래 놓고는 정부가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면서 세금 알바를 양산했다. 정책 실패를 세금 뿌리기로 메우면서 경제의 최후 보루인 재정까지 부실하게 만들었다. 정부가 할 수 없는 일, 해서는 안 되는 일만 골라서 하면서 민간의 활력을 갉아먹었다.

새 정부는 경제의 지속적 성장 환경 조성에 국정의 최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규제·공공 부문 혁신, 노동 개혁을 통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 교육 개혁으로 인적 자본의 고도화를 추진해야 한다. 개별 기업이나 산업 이슈에 대해선 개입하지 말고 자율적 시장 원리에 맡겨야 한다. 윤석열 당선인이 약속한 각종 현금 지급 공약도 국민에게 양해를 구하고 대폭 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