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분기에 대기업 근로자의 임금 상승률이 4년 만에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300인 이상 대기업의 월평균 임금(694만4000원)은 1년 전보다 13.2% 증가했다. 반도체 호황으로 삼성전자 등의 성과급이 급증했던 2018년 1분기(16.2%) 이후 두 자릿수 인상은 처음이다. 전체 근로자의 1분기 월평균 임금(408만4000원)도 1년 전보다 7.2% 늘었다. 분기 상승률로는 2018년 1분기(7.9%) 이후 가장 높았다.
지금의 임금 인상은 물가 상승으로 실질 임금이 하락하는 바람에 임금 상승 압박이 높아지고 이것이 다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임금 인플레이션’ 악순환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여력 있는 대기업들이 임금을 먼저 큰 폭으로 올렸고, 뒤따라 사회 전체적으로 임금 인상 요구가 확산되는 양상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4%로, 13년 9개월 만에 가장 높다. 한국노총은 2018년(9.2%) 이후 4년 만에 가장 높은 8.5%의 최저임금 인상률을 제시했다. 반면 중소기업 10곳 중 3곳은 인건비 증가에 대응할 여력이 없는 실정이다.
대기업의 임금 인상은 추가 고용 여력을 줄인다. 기업이 실적을 보전하려고 제품 가격을 올리니 그것이 또 물가를 자극한다. 실제로 시가총액 상위 15개 제조업체의 올 1분기 인건비(6조7833억원)는 작년 1분기보다 24% 늘었지만 직원(23만여 명)은 전년 동기보다 0.2% 감소했다. 게다가 기업들이 늘어난 비용 부담을 제품 가격에 이미 반영했거나 올해도 반영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물가 대책은 우크라이나 사태, 주요 곡물 생산 수출 제한 등으로 발생한 공급 측면에서의 상승 요인에만 맞춰져 있다. 수입 관세를 낮춰주는 것 외에 가격 상승 억제 등 시장 개입 정책은 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대기업이 임금 인상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거나, 음식점들이 원자재 가격 인상분 이상으로 음식값 등을 대폭 올린 것에는 손 놓고 있다. 실제 5월 물가 상승률 5.4%에는 외식 물가(7.4%)가 24년 2개월 만에 가장 크게 오르는 등 원가 상승분 이상으로 대폭 오른 측면도 있다. 불이 더 크게 번져 걷잡을 수 없게 되기 전에 치밀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