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참의원(상원) 선거가 치러진 10일 여당 자민당 총재인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당선자 이름 옆에 붉은색 장미를 붙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집권 자민당의 참의원 선거 압승 직후 “헌법 개정안을 가능한 한 빨리 발의해 국민투표로 연결하겠다”고 했다. 현행 일본 헌법은 패전 직후인 1946년 승전국인 미국의 맥아더 사령부가 만든 것으로 지금까지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을 비롯한 개헌 찬성 정당이 3분의 2 의석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언제든 개헌안 발의가 가능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문에 일본 국민의 개헌 찬성 여론도 늘었다고 한다.

현행 일본 헌법을 ‘평화 헌법’이라고 한다. 전쟁 포기와 함께 전력(戰力)을 보유하지 않고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 조항을 명기했기 때문이다. 과거 자민당은 개헌으로 이 조항을 폐기하거나 수정하려고 해 여론의 반발을 불렀다. 이를 피하기 위해 평화주의 조항을 유지하는 대신 자위대의 존재와 자위권을 헌법에 추가하겠다고 한다. 우회로를 통해 사실상의 군 전력과 교전권을 헌법적 권리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현행 헌법으로도 일본은 이미 군사 강국이 됐다. 동맹국 전쟁에 참전할 수 있는 집단적 자위권도 용인했다. 국방비 지출도 GDP의 2%로 늘렸다. 헌법의 평화주의 조항은 실질적으로 사문화된 지 오래다. 하지만 76년 만의 헌법 개정 그 자체가 갖는 의미를 주목해야 한다. 일본이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전면 재무장으로 가지 않은 것은 미·일 동맹과 함께 평화 헌법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큰 역할을 했다. 한번 고치기 시작하면 평화 헌법의 이념은 무너질 수 있다. 개헌론의 중심에 섰던 아베 전 총리의 불행도 이 흐름을 강화할 듯하다.

헌법을 개정하고 말고는 일본 국민의 선택이다. 하지만 일본은 침략 역사에 대해 피해국의 용서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반성과 사과 표명도 충분치 않을 뿐 아니라 일부 정치인의 역사 망언과 공격적 행태 역시 계속되고 있다. 과거의 잘못에서 벗어나 이른바 ‘보통국가’의 길로 가겠다면, 그럴수록 주변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금 일본에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는가. 일본이 이웃 나라의 최소한의 공감도 얻지 못한 채 평화 헌법을 허무는 일에 열중하면 그 반작용 역시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