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금융긴축 드라이브로 ‘강(强)달러’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연일 급등하고 있다. 5일 환율은 13년 5개월 만에 달러당 1370원을 넘어섰다.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1년 새 18%(214원)나 떨어진 것이다. 원화 가치가 이처럼 급격히 떨어진 것은 1998년 외환 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말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환율 급등은 세계적 달러 강세 현상에 따른 것이어서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른 주요 통화들도 달러 앞에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올 들어 원화 가치 하락 폭(-12%)은 주요 31개 통화 중 여덟 번째로 크다. 한국 경제가 그만큼 대외 환경 변화에 취약하다는 의미다.
수출 및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코로나 사태 장기화,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경기 침체 등에 따른 세계 무역 위축,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의 충격을 더 크게 받고 있다. 올 들어 8월까지 에너지 수입액(185억달러)이 1년 전에 비해 92% 폭증한 탓에 8월까지 무역적자가 247억달러로 66년 만의 최대치를 기록했다. 외환 당국이 귀중한 외환보유액을 소진해가며 환율 방어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1년 이하 만기인 단기 외채 비율이 10년 만에 다시 외환보유액의 40%를 넘긴 것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국내 일반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채권 투자가 늘고 이들에게 달러 실탄을 공급하기 위해 국내 은행들이 단기 해외차입금을 늘린 데 따른 것이다. 물론 우리 경우 외환보유액이 4000억달러가 넘고 대외 부채보다 대외 자산이 더 많아 외환위기를 걱정할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환율 급등은 물가를 끌어올려 취약 계층의 생활고를 가중시키고, 외국인 투자금 유출을 낳아 금융 불안을 촉발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경제의 ‘위기 경보’로 보는 것이 옳다.
미국은 당분간 계속 금리 인상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환율 상승을 제어하기 위해선 우리도 미국을 따라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에너지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겨울철을 맞아 무역 적자는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조건에서 무리한 환율 방어는 귀중한 달러 자산만 낭비할 수 있다. 강달러가 유발하는 고환율·고금리·고물가가 당분간 계속되고, 금리 인상 사이클이 마무리될 때까지 모든 경제 주체들이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최고의 경계심을 갖고 긴밀한 정책 공조를 통해 외환·금융시장 안정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