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양 산업부 장관이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에 대해 “보조금에 일반적이지 않은 조건들이 들어갔고 경영 본질 침해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 장관은 “경영권과 영업 비밀 노출, 기술 정보 노출, 초과 이익 환수 등에 우선순위를 두고 미국과 협상하겠다”고 밝혔다. 미 상무부가 발표한 반도체 지원법은 미 정부가 실험·생산 시설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반도체 기업에 우선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고 예상을 넘는 초과 이익을 내면 보조금의 75%까지 환수한다는 등 도를 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내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려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보조금을 받으려면 기술을 내놓으라는 것은 글로벌 기준에 어긋나는 과도한 요구다.
미 정부는 보조금 수령 기업에 대해 10년간 중국 내 반도체 설비 투자를 제한하는 내용도 곧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보조금 기준에 부합하려면 중국과 공동 연구나 기술 이전을 할 수 없고 생산량도 10년 동안 늘릴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 추가 투자를 할 수 없게 돼 장기적으로 사업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반도체 수출의 55%를 중국 시장에 의존하는 우리로선 큰 타격이다.
지금 한국 반도체 산업은 갈수록 난감한 지경으로 내몰리고 있다. 반도체 원천 기술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으로선 미국의 구상에 참여하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다. 하지만 미 반도체 지원법이 그대로 실행된다면 중국 반도체 시장을 잃고 민감한 기업 정보가 노출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반도체 패권 경쟁은 국가 간 산업 전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 미국 정부가 직접 나서 산업 질서를 재구축하고 게임의 룰을 바꾸려 한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우리도 기업에만 맡겨 둘 상황이 아니다. 정부가 직접 나서 미국의 과도한 반도체 지원법을 수정하는 데 외교 총력전을 벌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