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3일 ‘자녀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해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특별 감사를 실시하고 5급 이상 직원의 자녀 채용 사례를 전수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전·현 사무총장, 사무차장, 지방선관위 상임위원 자녀를 경력직으로 채용하는 과정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전·현 사무총장은 자기 자녀 채용 시 최종 결재권자이기도 했다. 공무원은 4촌 이내 친족 채용 시 보고하게 돼 있지만 이마저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임을 내세워 관련 의혹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거부해왔다. 뒤늦게 외부인이 참여하는 특별 감사를 한다고 하지만 이 역시 선관위 내부 감사에 속한다. 진상을 규명하려면 강제 조사권을 가진 수사기관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선관위는 북한의 사이버 공격 7건 중 6건은 인지 자체를 못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이 해킹 사실을 통보했지만 선관위는 통보받은 적 없다고 했다. “정치적 중립성에 관한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며 국정원 보안 점검도 거부했다가 뒤늦게 수용하겠다고 했다.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이 커지자 마지못해 수용한 것이라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헌법상 독립기관이란 것을 내세워 울타리를 치고 자기들만의 편한 아성을 만든 것 아닌가. 만일 선관위가 해킹을 당해 선거인 명부가 유출되거나 투·개표 조작, 시스템 마비 사태가 생기면 책임질 수 있나.
선관위는 1년 예산 4000억원에 직원 숫자가 3000명에 달한다. 전국 17개 시·도, 251개 시·군·구 지역 선관위를 두고, 재외 국민 투표 관리를 위해 미국·유럽·일본 등 해외 공관에도 수십 명이 나간다. 투·개표 실무 관리뿐 아니라 선거법 위반 단속, 선거 비용 조사 등 선거 관련 규제와 감독 권한까지 갖고 있다. 유럽과 영국·일본 등은 주로 행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선거 실무를 관리한다. 미국은 독립 기구가 있지만 선거 관련 규제·감독 기관과 투·개표 실무 담당 기관이 분리돼 있다.
우리 선관위는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방대한 조직과 권한을 갖고 있지만 능력도, 중립성도 부족했다. ‘소쿠리 투표’라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졌지만 독립기관임을 내세워 감사원 감사를 거부했다. ‘적폐 청산’ 구호는 허용하면서 ‘민생 파탄 투표로 막아주세요’는 금지했다. 민주당 시장의 성추행 사건 때문에 치러진 보궐선거 때는 여성 단체의 ‘보궐선거 왜 하죠?’ 캠페인에 선거법 위반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선관위가 독립성을 주장하려면 권한에 걸맞은 책임감을 먼저 갖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