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년간 1000억원을 지원하는 글로컬(Global+Local) 대학 심사 결과 신청 108대학 중 15곳(19대학)이 예비 선정됐다. 이 대학들의 특징은 학문·학과 간 칸막이, 대학과 대학 간 벽, 대학과 지역 산업계의 경계를 허물겠다는 개혁안을 낸 것이다. 부산대·부산교대, 안동대·경북도립대, 충북대·한국교통대 등 4곳은 두 대학을 하나로 합치겠다고 했다. 포항공대·울산대 등은 지역사회·산업계 연계를, 한동대·순천향대 등은 과감한 학문·학과 간 벽 허물기를 제시했다.
지금 우리 대학들 상당수가 치열한 연구와 수업이 이뤄지는 곳이 아니라 교수들의 편하고 안정된 직장이 돼 있다. 세상이 인공지능(AI)과 ‘챗GPT’ 시대로 무섭게 변하는데 교수들은 낡은 교과목을 붙들고 저항하는 대학이 한둘이 아니다. 반도체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반도체 관련 학과 졸업생이 매년 수천 명씩 모자라는 일이 벌어진 것이 대표적인 예다. 반도체만이 아니라 인공지능·빅데이터 등 IT 분야, 배터리·바이오·전기차 등 첨단 산업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인력 부족을 겪고 있다. 낡은 과목을 철밥통으로 붙들고 있는 교수들 저항을 극복하지 못하면 대학은 사회에 짐이 될 뿐이다. 대학 전체 정원 내에서라도 학문별 정원을 유연하고 신속하게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학과 구분 시대는 끝난 지 오래다. 학과는 교수들에게는 중요하겠지만 학생에게는 필요 없는 구시대의 유물이 돼가고 있다.
학생들이 선호하는 주요 대학도 대학 서열화 해소 등 사회 병리 현상을 치유하는 데 동참해야 한다. 이 대학들이 과감하게 문호를 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서울대가 지방 국립대와 강의를 공유해 일정 학점 이상을 따낸 학생들에게 부전공을 인정하는 등으로 개방하면 ‘교육 지옥’을 해소하는 전기의 하나가 될 것이다.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저출생 여파로 20년 후에는 대학 재학생 수가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 그런데도 대학 구조조정은 지지부진하다. 이번 최종 글로컬대학 30곳에서 탈락한 대학 중 상당수는 사실상 독자 생존이 어려울 것이다. 이런 대학의 퇴로 마련을 위한 사립대 구조 개선법도 늦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 국회에는 학교 법인이 해산할 경우 잔여 재산의 최대 30%를 설립자 등에게 해산 장려금으로 지급할 수 있는 법안이 제출돼 있다. 부실 대학 연명에 따른 사회적 손실이 더 클 수 있다. 일정 비율의 해산 장려금을 지급해서라도 부실 대학 구조 조정을 촉진해야 한다. 세계가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 그 변화를 선도해야 할 대학이 오히려 가장 늦게 움직이는 짐이 되고 있다. 더 이상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