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투자 손실 사태와 관련, 금융 당국의 조사 과정에서 은행들이 직원 핵심 성과 평가(KPI·Key Performance Indicator)에서 ELS 판매 실적에 대해 30~40% 이상 배점을 부여해 고위험 투자 상품 판매를 사실상 부추겨온 사실이 드러났다. 국내 은행들은 2021년 이후 홍콩H지수 ELS를 수십조 원어치 판매했는데 기준이 되는 홍콩H지수가 반 토막 나는 바람에 대규모 투자 손실이 우려되고 있다. 올해 15조원어치 홍콩 H지수 ELS만기가 돌아오는데 3~4조 원 이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LS 투자자들은 은행으로부터 투자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들은 바 없다면서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투자자의 절반가량이 60대 이상이고, 90대 이상 고령자에게도 ELS를 판매한 것으로 드러나 은행의 무리한 판매 정황을 뒷받침하고 있다. 금융 당국 조사 결과, 고위험 투자 상품을 많이 팔수록 높은 점수를 주는 은행 인사평가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홍콩H지수 ELS를 가장 많이 판매한 국민은행의 경우, 인사평가에서 1000점 만점에 410점이 고위험 상품 판매 실적과 관련한 배점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방식 탓에 은행들은 ELS가 손실 구간에 들어갔는데도 정상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것처럼 평가해 주고, 내부 규정까지 고쳐 ELS 판매 한도를 늘리며 ELS 판매를 부추긴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과거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 고위험 투자 상품 판매와 관련한 금융 사고가 터질 때마다 영업점의 무리한 고위험 상품 판매를 부추기는 인사평가 체계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선진국 은행들은 국내 은행과 달리 수익성뿐만 아니라 장기 성과 지표인 건전성, 고객 보호에 높은 배점을 부여하고, 무리한 상품 판매를 부추기는 영업점 상대 평가도 하지 않는다. 현재와 같은 인사평가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은행의 무분별한 고위험 투자 상품 판매와 그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