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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이 11일 홍콩 H지수 ELS 피해 배상안을 발표하고 있다./뉴시스

금융감독원이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사태와 관련, 평균 40% 이상 손실금을 배상할 것을 은행들에 권고했다. 은행의 부실 판매 정도가 심할 경우 최대 100%까지 배상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사태는 안전성 위주로 운영돼야 할 은행이 도박 같은 고위험 상품 판매에 열을 올리고, 이를 수습하느라 당국이 개입하는 등 한국 금융이 얼마나 후진적인지를 또 한번 보여주고 있다.

이번 사태에서 은행은 책임을 피할 수 없다. 4년 전 독일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대량 손실 사태 후 정부가 2021년 고난도 투자 상품 판매를 규제하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을 만들었지만, 수수료 수입에 목맨 은행들은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며 홍콩H지수 연계 ELS를 19조원어치나 팔았다. 실태 조사 결과 은행들이 직원 성과 평가에서 ELS 판매 실적 항목에 30~40% 이상 배점을 부여해 ELS 판매를 부추겨온 사실이 드러났다. 은행들은 ELS가 손실 구간에 들어갔는데도 정상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것처럼 평가하고, 내부 규정까지 고쳐 판매 한도를 늘리며 ELS 판매를 독려했다.

금융 당국에도 책임이 있다. 금감원은 DLF 사태 후 은행의 고위험 금융 상품 판매를 금지하려다 소비자 선택권을 강조한 은행들 요구를 수용해 ELS 판매는 계속 허용하기로 물꼬를 터주었다. 그런데 그 후 사후 감독과 감시를 소홀히 해 피해 규모가 커진 것이다. 은행들의 내부 통제 체제와 당국의 외부 감시 시스템이 동시에 고장난 것이다.

투자자들의 책임도 있다. 투자는 기본적으로 ‘자기 책임’이다. 모든 투자는 자신이 위험을 떠안는 것이다. 이익이 나면 자신의 몫이고 손해가 나도 자신의 책임이다. ELS 상품을 사려면 반드시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부분을 듣고 직접 서명해야만 한다. 금융 지식을 쌓고 상품에 대한 이해력을 높여야 하는 것도 투자자 책임이다. 만약 금융회사가 고의나 과실로 투자자에게 손해를 끼쳤다면 법적 절차를 통해 구제받는 것이 선진국형 해법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선 투자에서 손해를 본 사람 숫자가 많으냐, 적으냐로 결과가 달라진다. 숫자가 많으면 손실을 물어내라는 주장이 고개를 든다. 정부는 이에 굴복해 금융사를 압박한다. 선진적이고 합리적인 금융이 자리 잡을 수 없다. 정부, 은행, 투자자 모두 교훈을 얻어야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