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신임 비서실장에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 정무수석에 홍철호 전 의원을 임명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직접 인사 발표를 하며 1년 5개월 만에 기자들과 질의응답도 주고받았다. 윤 대통령은 “지금부터는 국민들께 더 다가가고 야당과의 관계도 더 소통하고 설득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했다. “이제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윤 대통령이 변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결코 일회성 행사나 말로 그쳐선 안 된다.
이번 총선에서 심판받은 것은 국민의힘이 아니다. 대통령실 참모들도 아니다. 국민은 윤 대통령을 심판한 것이다. 이관섭·김대기 전임 비서실장은 능력을 인정받아 온 엘리트 관료였다. 신임 정진석 실장도 국회의원 5선에 국회부의장, 여당 비상대책위원장·원내대표, 청와대 정무수석 등을 두루 지냈다. 아무리 경륜과 능력을 갖춘 인사를 참모로 둬도 대통령이 독선과 불통에 갇히면 소용이 없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자신과 부인으로 인해 일어난 각종 논란에 대해 아무 해명이나 사과를 하지 않았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논란에 끝까지 침묵했고, 해병대원 순직 사건으로 수사받던 이종섭 전 국방장관을 호주 대사로 임명해 출국시켰다. 의대 증원 문제도 조기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수렁에 빠뜨렸다. 여당 내부에 번번이 간섭하며 세 번이나 비대위 체제로 몰았다. 참모진을 누구로 교체해도 이런 일들이 되풀이된다면 국정 정상화는 힘들다.
대통령은 당연히 정치를 해야 하는 자리다. 여야와 각계 인사들을 두루 만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한다. 비판을 듣고 방향이 틀렸다면 고쳐야 한다. 총선에 진 뒤 비로소 정치를 하겠다니 만시지탄이다. 정진석 실장은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대통령께 객관적인 관점에서 말씀을 드리겠다”고 했다. 비서실장이 이 말을 지키고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인다면 나라와 사회의 분위기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특검 문제는 물론이고 의료 파행 사태와 노동·교육·연금 개혁, 민생 대책 등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회동이 시험대가 될 것이다. 민주당은 국회가 시작하기도 전에 “협치를 머릿속에서 지워야 한다”고 한다. 이 난관을 극복하는 출발점은 결국 대통령 본인이 바뀌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