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와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김진표 국회의장 주재 여야 원내대표 회동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이덕훈 기자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28일 열리는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 안건 합의에 실패함에 따라 여야 간 이견이 없는 주요 민생·경제 법안들도 대거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국민의힘은 해병대원 특검법 재의결 등 미합의 안건을 본회의에서 빼지 않으면 의사 일정 자체를 진행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반면 민주당은 특검법과 전세사기특별법을 포함한 논란 법안들까지 한꺼번에 밀어붙이고 있다. 특검법 정쟁 속에 애꿎은 민생 법안들이 희생될 판이다.

사용후 핵연료 저장을 위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이 대표적이다. 원전 가동으로 발생하는 폐기물 저장소를 짓지 않으면 2030년 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한울(2031년), 고리(2032년) 원전 등이 차례로 문을 닫아야 한다. 지금은 원전 내 임시 저장소를 이용하고 있지만 포화가 멀지 않았다. 실제 대만에선 2016년 사용후 핵연료 저장 시설이 꽉 차 원전 가동을 중단한 적도 있다. 법안 처리에 반대하던 민주당이 ‘폐기물 저장 용량을 제한하자’는 안을 내고 정부·여당이 이를 받아들여 어렵사리 합의가 이뤄졌다. 하루빨리 저장소 공사를 시작하지 않으면 6년 뒤 전력 대란이 일어나는데도 특별법은 자동 폐기가 눈앞이다.

미래 먹을거리인 AI 산업 육성을 위한 근거가 담긴 ‘AI 기본법’과 반도체 등 투자액 세액 공제를 2030년까지 연장하는 ‘K칩스법’ 등도 발이 묶여 있다. ‘K칩스법’은 올해 말이 일몰 기한이라 한시가 급하다. 대형 마트 휴무일을 주말에서 평일로 바꾸는 유통산업발전법,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변호사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완화하는 ‘로톡법’, 악덕 부모의 자녀 재산 상속을 막는 ‘구하라법’, 법관 증원으로 재판 지연을 해소하기 위한 법안, 세계 최악의 저출생 극복을 위해 육아휴직 기간을 3년으로 늘리는 법안 등도 좌초할 운명이다. 22대 국회로 넘기면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야 하고 여야 합의도 불투명해진다.

폐기 위기인 민생·경제 법안들은 전부 국민 삶과 국가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다. 정쟁 대상도 아니다. 민주당이 기존 입장을 바꾼 이번이 좋은 기회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특검법 처리 명분을 만들려고 민생 법안들을 내세우는 것으로 의심한다. 민주당 정략이 그렇다면 국민의힘은 특검법 등 미합의 법안엔 반대표를 던지고 합의한 민생 법안에는 찬성하면 된다. 21대 마지막 본회의에서 이견이 없는 민생·경제 법안들은 처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