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중 정상이 어제 막을 내린 3국 정상회의 공동선언에서 “우리는 역내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납치자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각각 재강조했다”는 표현을 썼다. ‘역내 평화와 안정’은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는 한국이, ‘납치자 문제’는 일본이 각각 강조했으며, 이들 문제에 대한 인식 차를 좁히지 못한 채 각자의 입장만 개진했다는 뜻이다. 9회째를 맞는 역대 한·일·중 정상회의를 통틀어 이 정도로 확연한 입장 차를 노출한 적은 없었다. 합의된 내용을 담는 공동선언문에 ‘각각 재강조했다’(reiterated respectively)는 표현을 쓴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당초 공동선언문 초안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공통 목표로 삼는다”는 문구가 들어갔지만 중국이 완강히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선언문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한다”(2018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2019년)는 표현을 쓴 과거에 비해 크게 후퇴했다. 최근 미·중 갈등 격화에 따라 중국의 북핵 정책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어제 정상회의 직전 북한은 정찰위성 발사 계획을 일본 정부에 통보했다. 기술적으로 ICBM 발사와 다를 게 없는 위성 발사는 안보리 대북 제재 위반이다. 한·일 정상은 회의 모두 발언과 기자회견을 통해 이 점을 지적하며 “단호한 대응”을 강조했지만 중국 리창 총리는 언급을 피했다. 북한의 도발 예고는 중국공산당 서열 2위의 인사가 서울에서 한·일 정상과 회의 중인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규탄을 해야 마땅한데도 북을 두둔했다.
5년 만에 열린 3국 정상회의와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많은 합의도 이뤄졌다. 한·중 FTA 2단계 협상과 13년째 중단된 한·중 투자협력위를 재개하기로 한 것은 성과다. 한·일은 안보에서 미국과의 협력을 크게 강화하고 있지만 중국과의 관계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국제 관계의 양면성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은 외교의 기본이다. 앞으로 미국 대선에 따라 미·중 관계는 크게 출렁일 가능성이 있다. 어떤 경우에도 미국과의 안보 동맹에 흔들림이 없도록 하되 중국과의 기본 관계 역시 잘 관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