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이 공동으로 열기로 했던 24일 사도광산 희생자 추도식이 일본만 참석한 채 반쪽으로 진행됐다. 일본 대표의 야스쿠니 신사(A급 전범 합사) 참배 의혹이 불거진 데다 추도사 내용도 우리 측 요구에 미치지 못하자 정부는 23일 불참을 결정했다. 일본 매체들은 추도식 대표인 외무성 정무관(차관급)이 “2022년 8·15 때 야스쿠니를 참배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이날 “한반도 노동자들이 위험하고 가혹한 환경에서 힘든 노동에 종사했다”고 했지만 징용의 강제성을 인정하거나 반성하는 내용은 없었다. 한국은 25일 희생자 유족 9명과 함께 별도 추도식을 열기로 했다.
일본이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사도광산을 등재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배려 덕분이었다. 사도광산은 조선인 강제 노역의 현장이다. 세계유산 등재는 유네스코 회원국의 전체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한국이 반대하면 무산될 수밖에 없다. 일본은 한국 동의를 얻으려고 희생자 추도식과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를 약속했다. 우리 정부는 한일 관계 개선이란 큰 틀을 위해 일본의 약속을 믿고 찬성표를 던져줬다. 그런데 일본은 조선인 노동자 전시 공간을 광산에서 2km 떨어진 곳에 마련하더니 ‘강제 노역’ 관련 표현도 쓰지 않았다. 이번엔 공동 추도식 약속까지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일본은 군함도 탄광 세계유산 등재 때도 그랬다. 한국 정부가 강력히 반대하자 “1940년대 한국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환경 아래서 강제 노역한 일이 있었다”고 인정하면서 전시 시설에 희생자를 기리는 내용을 담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등재에 성공하자 말을 바꿨다.
내년이 한일 수교 60주년이다. 김정은의 핵 폭주는 브레이크가 없고 중국의 패권 야욕은 노골적이다. 트럼프 당선으로 미·중 관계도 격랑이 예상된다. 어느 때보다 필요한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한국 정부는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을 배려했다. 그런데 일본은 상응하는 조치로 답하고 있지 않다. 이래서야 어떻게 미래를 위한 한일 관계를 열어갈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