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욱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정 의원을 '내란공범'으로 표현한 현수막은 게재되었지만, '이재명은 안 됩니다'라는 현수막은 선관위로부터 게재 불가 결정이 내려졌다. /정연욱 의원 페이스북

중앙선관위는 국민의힘 의원을 ‘내란 공범’으로 표현한 현수막은 허용하면서 ‘이재명은 안 된다’는 현수막은 불허한 바 있다. ‘이재명은 안 된다’ 현수막은 사전 선거운동이 될 수 있어 금지하고, 여당 의원을 ‘내란 공범’이라고 한 것은 사전 선거운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자 선관위가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돼 조기 대선이 치러지고, 이 대표가 대선 후보가 된다는 것을 기정사실처럼 전제로 한 것이란 비판이 나왔다. 결국 선관위는 23일 위원장 주재로 회의를 열어 ‘이재명은 안 된다’ 현수막은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현수막을 허용하기로 했다. 선관위는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기로 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의 이유 중 하나로 선관위의 부정선거 의혹을 거론했다. 윤 대통령은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지만 사회 일각에서 꾸준히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돼 온 것은 사실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선관위는 모든 결정을 신중에 신중을 기해 해야 한다. 그런데 헌재의 탄핵 심판 인용과 조기 대선을 기정사실 삼아 결정을 내려 버렸다. 매우 경솔한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니 부정선거 음모론이 끊이지 않는다.

선관위는 문재인 정부 내내 민주당에 기울어졌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선관위는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보궐선거 왜 하죠’라는 캠페인에 대해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을 연상시킨다며 불허했고, ‘내로남불’ ‘위선’ ‘무능’이란 단어가 특정 정당을 떠올리게 한다는 납득 못 할 이유로 허용하지 않았다. 결정이 조롱거리가 되자 선관위는 2022년 대선 때는 ‘내로남불’을 허용했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지명한 대법관들이 선관위원장으로 재직했을 때 선관위에서는 정치적 편향성 문제와 함께 ‘소쿠리 투표’, 직원들의 세습 채용 등이 벌어졌다. 선관위는 그때마다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지금과 같은 민감한 시점에 또 편파성 문제를 자초했다.

선관위는 최근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것만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부정선거 의혹이 계엄의 한 원인으로까지 언급됐으니 이를 근절하겠다는 것이지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다. 선관위가 부정선거 의혹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다면 국민을 위협할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편파적 결정을 내리는 일부터 중지해야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선관위가 뒷감당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