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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특별법이 ‘주 52시간 근로제’ 예외 조항을 둘러싼 여야 의견 대립으로 무산됐다. 더불어민주당이 노조를 의식해 반대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반도체 산업이 직면한 위기는 주 52시간제 때문이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경직적인 주 52시간 규제가 산업 경쟁력을 훼손시킨다는 것은 입증된 사실이다. 대한상의 조사에서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연구·개발(R&D) 성과가 줄었다는 기업이 4곳 중 3곳에 달했다.

지금 어영부영하다가는 30년 전 일본 반도체의 몰락을 뒤따르게 된다. 삼성의 경쟁자인 대만 TSMC는 10년 전 파운드리 공정 기술에서 삼성에 밀리자 위기를 느끼고 R&D를 하루 24시간 풀가동하는 ‘나이트호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오늘날 TSMC가 세계 1위로 도약한 핵심 비결이다.

민주당은 반도체 특별법에서 “반도체의 몸통이라 할 수 있는 전력망, 용수, 도로, 인력 양성 지원 문제를 먼저 처리하겠다”고 했는데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모르고 하는 얘기다. ‘주 52시간’ 문제는 반도체 특별법의 꼬리가 아니라 몸통에 해당한다. 반도체는 수천억 원을 들여 신제품·신기술을 개발한다. 개발이 끝난 시점에도 문제가 발견되거나 고객 요청이 있으면 가용 인력을 다 투입해 신속하게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 미적대면 바로 시장을 뺏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보조금이나 세금 공제 같은 금전 지원보다 주 52시간 예외 적용이 더 절실하고 긴박하다고 호소하는 이유다.

주 52시간 예외 조항을 반도체 산업 중에서도 연구개발 분야에만 국한해 근로시간 총량을 늘리지 않는 범위에서 노사 합의를 전제로 적용하자는 데도 민주당은 무작정 노조 편만 들며 반대하고 있다. 노조는 한번 예외가 주 52시간제 전체를 무너뜨린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반도체 연구·개발에 국한해 주 52시간 예외를 3년간 한시적으로 시행해 볼 수 있다. 그 3년 동안 노조 주장대로 노동 조건 후퇴 등의 문제가 발견된다면 얼마든지 수정하거나 조항을 폐기하면 된다.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은 원래 경제 중심 정당”이라고 했다.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변하지 않으면 바보”라고도 했는데 민주당과 이 대표 스스로를 가리켜 하는 말 같다. 이 말이 조금이라도 설득력을 가지려면 반도체 주 52시간제 예외의 실험적, 한시적 시행이라도 수용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