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트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2월 28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하던 중 서로를 향해 언성을 높이고 있다. /CNN

영국·프랑스·독일 등 나토 동맹국 정상 10여 명이 2일(현지 시각) 런던에서 만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과 러시아 제재 지속, 우크라이나를 뺀 평화 협상 반대 등에 뜻을 모았다. 핵보유국인 영국·프랑스가 주도하는 새로운 우크라이나 안전 보장 계획도 추진하기로 했다.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의 핵 억제력 논의를 시작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독일 차기 총리가 제안한 ‘유럽 핵 공유’에 공감한 것이다. 독일은 미국과 ‘핵 공유 협정’을 맺고 있다. 미국의 핵 사용 결정 과정에 의견을 반영하고 핵 투하도 자국 전투기로 한다. 그러나 트럼프 등장으로 미국의 ‘핵우산’ 약속을 믿기 어려워진 만큼 유럽끼리 뭉쳐 푸틴의 핵 위협에 대응하려고 한다. 소련 붕괴 후 우크라이나는 핵탄두 1600여 기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1994년 미국·영국·러시아의 영토 보장 약속을 믿고 핵을 폐기했다. 지금 러시아는 물론 미국도 우크라이나를 함부로 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한국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럭비공 같은 트럼프지만 중국 견제는 변함없는 핵심 전략 목표이고, 한국은 중국을 상대하는 데 중요한 동맹국이다. 트럼프가 취임 직후 ‘한미 조선 협력’을 제기한 것은 중국군에 뒤지는 미 군함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방미해 군함·탱커(LNG 운반)·쇄빙선 등의 대미 공급 방안을 제시하자 ‘생큐’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도 미국은 한국의 제조업 역량이 꼭 필요하다. 그동안 트럼프가 한국에 보낸 메시지는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트럼프의 미국은 우리가 알던 미국이 아니다. 미 국무 장관은 “세계에 일극 세력만 있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라며 “다극화 세계로, 여러 열강이 있는 지점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일극 체제를 스스로 거부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무역을 내걸고 미국이 세계 경찰 역할을 하던 시대는 끝나는 분위기다.

트럼프는 젤렌스키에게 “우리(미국) 무기가 없었으면 전쟁은 2주일 만에 끝났을 것”이라며 종전을 압박했다. 안보를 외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한 나라가 겪는 운명이다. 트럼프는 중국의 대만 침공에 관한 질문에도 “절대 언급하지 않겠다”고 했다. 우크라이나·대만과 달리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다. 트럼프가 한국의 안보·경제 역량이 필요한 만큼 한미 동맹을 강화할 기회는 있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스스로를 지키는 데 필요하다면 어떤 수단도 금기시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