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이 주최한 개헌 토론회에서 전직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등 정치 원로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 중에는 민주당 출신도 있고 국민의힘 출신도 있다. 강창희·김형오·정의화·문희상·정세균·박병석·김진표 전 국회의장과 정운찬·김황식·이낙연·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토론회에 직접 참석해 발언하거나 서면으로 의견을 보냈다. 정대철 헌정회장과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참석했다. 여야와 보수·진보에 상관없이 정치 원로들이 개헌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 것 자체가 지금 개헌이 얼마나 절실한 국가적 과제인지를 증명한다.
참석자들은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승자 독식의 헌법 체제로 생기는 정치의 양극화”라며 “권력을 분산시키는 개헌을 통해 정치를 복원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 대통령은 임기를 단축해 총선과 대선의 주기를 맞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들은 여야의 극한 충돌이 결국 계엄과 탄핵, 대규모 찬반 시위로 이어지는 현실을 보면서 ‘이대로는 국민에게 미래가 없고, 개헌으로 정치 갈등이 줄어든 새로운 나라로 가야 한다’는 데 한마음이 됐다. 현역 시절 여야 진영으로 갈라져 첨예하게 맞섰던 정치 원로들이 ‘이렇게 더 이상은 안 된다’고 함께 모여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와 별도로 이날 개헌특별위원회 1차 회의를 열었고, 대한민국 헌정회와 민주화추진협의회도 6일 개헌 토론회를 연다.
각 정당과 대선 후보들은 대선 때마다 개헌을 공언해왔다. 개헌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선이 유력한 대선 후보들이 대선 전 개헌을 가로막았고, 이 중 당선된 사람은 자신의 임기 중 개헌을 방해했다.
이번에도 만약 조기 대선이 이뤄질 경우 여야의 대선 주자들은 개헌을 공언하고 있다. 국민의힘에선 대부분의 주자가 개헌을 위한 임기 단축을 주장하고 있고, 민주당에서는 이재명 대표를 제외한 대선 주자 다수가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최근 탄핵 심판에서 개헌 의사를 밝히며 임기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했다.
문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 한 사람이다. 3년 전 대선 당시 이 후보는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개헌을 주장하면서 “당선되면 임기를 1년 단축하겠다”고 공약했다. 대선 이후에도 이 대표는 국회 개헌특위 구성을 제안했다. 그러나 계엄 이후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고 자신이 여론조사에서 1위에 나서자 개헌을 외면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국민 60%가 개헌에 찬성하고 여야 모두에서 개헌의 목소리가 커지게 되면 이 대표와 민주당도 지금처럼 개헌을 반대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경제와 사회의 발전을 정치가 가로막고 있는 심각한 병목 현상에 빠져 있다. 규제 개혁, 노동 개혁, 연금 개혁, 교육 개혁, 공공 개혁 등 경제 사회 재도약을 위한 핵심 국정 과제가 전부 정치에 막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근본 원인은 ‘너 죽고 나 살자’식 정치다. 상대를 죽이려면 모든 것을 반대해야 한다. 이래서는 국민, 특히 젊은 세대에게 미래가 없다.
과거처럼 개헌이 대선 주자들의 공언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 이 대표를 포함한 주요 정치인들이 개헌의 방법과 구체적 시기를 담은 문서에 서명해 대국민 약속을 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