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근(왼쪽)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1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동진쎄미켐 판교연구소에서 열린 반도체 연구개발 근로시간 개선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산업통산자원부

정부가 임시방편으로 자체 지침을 고쳐 반도체 기업 연구개발(R&D) 직군의 주 52시간 근로 규제를 풀겠다고 했다. 민주당이 주 52시간제 예외를 법으로 인정하는 반도체 특별법 제정에 반대하자 입법 없이도 할 수 있는 노동부 지침이라도 개정해 반도체 업체들의 숨통을 터주기로 한 것이다. 정부가 검토하는 안은 1회 최대 인가 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것 등이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반도체 업체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반도체특별법을 제정해 R&D 분야에 한해 주 52시간 근로제한 규정을 완화해 달라는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리얼미터) 결과 반도체 산업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허용을 찬성(58%)하는 의견이 반대(27%)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절반 가까이 찬성했다. 민주당은 처음엔 ’반도체 주 52시간 예외‘를 수용할 것처럼 말하더니 노조가 반대하자 입장을 뒤집었다.

특별연장근로는 불가피하게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할 경우 근로자 동의와 노동부 장관 인가 절차를 거쳐 주 64시간까지 연장 근로가 가능하도록 한 제도다. 그러나 인가 서류가 복잡하고 근로자 동의를 받기가 어려운 점 등 요건이 까다로워 사용은 매우 저조했다. 그래서 반도체 업체들은 특별법 제정을 호소해왔다. 법이 아닌 지침으로 할 경우 업계 숨통은 트일 수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아니다. 법을 제정하면 연구개발 분야는 52시간 예외를 받지만 지침 개정으로는 단위 기간별로 계속 노동부 인가를 받아야 한다.

지금 우리 처지에서 반도체마저 세계 경쟁에 뒤처질 경우 국가 안보와 국민 경제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인 주 52시간 규제가 혁신의 발목을 잡고 산업 경쟁력을 훼손시킨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노조의 포로가 돼 연구·개발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는 것은 개탄스럽다. 반도체 연구·개발에 국한해 주 52시간 예외를 3년 정도 한시적으로 시행해 보고 실제 문제가 발견된다면 얼마든지 수정하거나 조항을 폐기하면 될 텐데 노조를 따라 무조건 반대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