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12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반도체 분야 특별연장근로 요건 완화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기획재정부

민주당이 주 52시간제 예외를 인정하는 반도체 특별법 제정을 막자, 정부가 궁여지책으로 ‘특별 연장 근로’에 관한 노동부 지침을 손질해 반도체 연구·개발(R&D)은 주 64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도록 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치열한 기술 경쟁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서는 핵심 인력들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이 절실하다”고 했다.

하지만 치열한 기술 경쟁이 벌어지는 분야는 반도체만이 아니다. 최 대행이 이 정책을 발표하기 전날, 한국은행 베이징사무소는 “중국 조선 산업의 경쟁력이 모든 영역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는 보고서를 냈다. 과거 중국 조선 업체들이 벌크선 등 저부가가치 선박을 집중 수주했지만, 최근엔 달라진 기술 역량을 토대로 컨테이너선, 가스 운반선까지 대거 수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조선 분야 R&D 인력은 1만8000명으로, 1300명에 불과한 한국의 14배에 달한다. 중국의 기술 추격에 위기감을 느낀 국내 조선 업계는 첨단 선박 기술 R&D 인력에 한해서 주 52시간 예외를 인정해 달라고 정치권에 계속 요청해 왔다. 트럼프 2기 출범으로 한국 조선업이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R&D 인프라가 중국에 비해 현저히 부족해 호기를 살려나갈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2차 전지 업계도 중국에 기술 우위를 잃어가는 위기감 속에서 연구·개발 인력의 주 52시간 예외를 계속 요청해왔다. 한국 배터리 기업의 최대 경쟁자인 중국 CATL에선 연구·개발 인력에 대해선 8·9·6 근무제(오전 8시 출근, 오후 9시 퇴근, 주 6일 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국내 2차 전지 연구 인력이 중국 CATL의 10분의 1에 불과한데 어떻게 기술 경쟁에서 이기겠나.

한동안 한국이 압도했던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산업이 중국의 추격에 따라잡혔다. 이제 반도체, 조선, 2차 전지까지 중국에 덜미를 잡히려 한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노조 편만 들고 있다. 노동부 지침 개정을 통한 특별 연장 근로 확대라도 반도체 외에 주요 산업의 연구·개발 업종으로 확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