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중국 고정 구조물. 중동에서 약 30년간 사용되던 프랑스제 시추선으로, 2016년 폐처리됐을 때 중국이 매입해 개조해 2022년 10월 서해 잠정조치수역에 설치했다. 해수부 해양조사선 온누리호가 지난 2월 26일 현장 조사에 나가 실제 촬영한 것이다. /국토위 국민의힘 엄태영 의원

중국이 서해 한·중 잠정 조치 수역에 시추선을 개조한 고정 구조물을 설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위성과 드론 사진을 분석해보면 가로 100m, 세로 80m, 높이 50m 크기로 철제 다리가 바다에 박혀 있다. 헬기 이착륙장도 있다. 남중국해처럼 사실상 ‘인공섬’을 만든 것이다.

서해 국경을 획정하지 못한 한·중은 중간에 잠정 수역을 설정하고 어업을 제외한 다른 행위는 일절 안 하기로 합의한 협정을 지난 2001년 발효했다. 그런데 중국은 지난해 ‘양어장’이라고 주장하며 대형 이동식 구조물 2기를 서해에 띄웠다. 어업 관련 시설이니 합의 위반은 아니라는 것이다. 시추선을 개조한 고정 구조물도 ‘양어장 관리 시설’이라고 주장한다. 축구장보다 더 큰 ‘관리 시설’이 바다에 왜 필요하나. 중국이 고정 구조물을 중간 수역에 박은 속셈은 뻔하다. 남중국해에 썼던 수법으로 서해를 중국 바다로 만들려는 것이다.

중국은 10여 년 전 남중국해에 인공섬 7개를 세웠다. 암초에 시멘트를 쏟아부어 비행장 등을 깔고 군인을 보냈다. 인근 국가의 접근을 막으며 인공섬 규모를 계속 키웠다. 2016년 남중국해 영유권 소송에서 국제상설중재재판소가 중국 패소 판결을 했지만 깔아뭉갰다. 이제는 지중해보다 넓은 남중국해의 85% 이상을 ‘중국 영해’라고 주장한다. 분쟁 지역에 말뚝을 박고 야금야금 잠식하는 것이 중국 수법이다.

중국 시추선이 2014년 베트남 근해에 자리 잡자 베트남 어선들이 돌격했다. 그러자 시추선을 호위하던 중국 어선들이 베트남 어선들을 침몰시켰다. 중국은 준군사 조직인 해상 민병대를 운영하면서 분쟁 수역에서 해군 대신 상대 선박을 공격하게 한다. 무장도 한다. 지난 2월 우리 해양 조사선이 ‘서해 구조물’에 접근하자 중국 민간 보트 3대가 위협적으로 막아섰다. 칼을 든 중국인도 있었다. 헬기장까지 갖춘 고정 구조물은 언제든 군사 시설이 될 수 있다.

중국의 ‘서해 공정’도 10여 년 전 시작됐다. 경비함을 백령도 코앞인 동경 124도 해역에 보낸 뒤 한국 해군은 이 선을 넘어오지 말라고 위협했다. 이젠 ‘인공섬’ 수법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동 양어장’과 ‘고정 시추선’은 차원이 다르다. 영토 주권과 국익 문제에서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중국 구조물에 대해 ‘주권 침해 행위’라고 한목소리를 낸 것은 다행스럽다. 공동 대응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남중국해처럼 영유권을 뺏기지 않으려면 중국 도발에 비례해 돌려줘야 한다. 중국이 국가간 합의를 무시한다면 우리도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중국과 같은 크기의 시추선과 양어장 시설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정부는 관련 예산부터 확보하고,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해 비례적 대응에 속도를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