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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인 지난 22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집회 모습./박성원 기자

최근 외신 기자 A씨를 만났는데 “한국 뉴스는 이해가 안 된다”고 본국 독자들의 항의가 잦다는 고충을 들었다. 그는 대통령이 12월 3일 밤 갑자기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이 내용을 국무위원들과 여당 의원들은 물론 안보 동맹국인 미국조차도 사전에 몰랐으며,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대표는 전과 4범에 지금도 재판 5개가 진행 중인데도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고, 야당이 국무총리에 이어 ‘대통령 권한대대행’인 경제부총리까지 겨냥해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는 일 등을 상세히 보도했다고 한다. 그러자 독자들이 “이게 말이 되느냐, 기자가 사실 관계를 이해 못 하고 쓴 것 아니냐”고 질타한다는 것이다. “한국에 상식 밖의 일이 많아져서 나부터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A씨의 토로를 들으며 브레히트의 ‘소격 효과’를 적용해 보니, 도처에서 이해 못 할 일들이 벌어지는 한국의 현실이 새삼 보였다.

이번 영남 산불 사태로 숨진 산불 진화 대원이나 소방 헬기 조종사 등은 70세 안팎 노인들이다. 실효성 있는 산불 예방과 진화를 위해선 소방 장비 노후화와 인력 고령화 문제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는데 정부와 지자체는 그간 무슨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 궁금하다. 민주당은 올해 예산안을 독단 처리하면서 재해·재난에 투입되는 예산을 1조원 삭감했는데, 그 후 경기도 폭설과 무안 제주항공 참사, 영남권 대형 산불 등이 연달아 터지는 상황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이라도 느끼는지 궁금하다. 한 시민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의 대형 싱크홀도 바닥 균열 신고가 이미 있었다는데 조치가 왜 바로 안 됐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호국 영령 앞에서도 여야가 나뉜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26일 열린 천안함 피격 사건 15주기 추모식에 총출동했지만,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의원 50여 명과 함께 이날 서울고등법원 앞에 도열해 이재명 대표의 재판을 지켜봤다. 22대 민주당 의원 중엔 천안함 폭침을 부정하는 음모론이나 막말을 했다가 유족에게 규탄당한 인사가 여럿 있다. 이들이 폭발로 찢겨진 천안함을 실제로 본 적이나 있는지 의문이고, 한국 해군의 명예를 왜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인지 이해가 안 된다.

18년 만에 손댄 국민연금은 MZ세대가 더 내고, 586 세대가 더 받는 구조로 바뀐다. 인구 피라미드와 반대로 가는 방향이라 청년층의 반발이 극심한데도 정치권은 ‘개혁’이라고 주장한다. 정부가 작년 의대 증원 첫 발표를 왜 ‘2000명’으로 했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 덕에 올해 입학한 의대생들도 수업을 거부하는 행태엔 공감이 안 된다. 소속사와 분쟁 중인 걸그룹 뉴진스가 국회 국정감사까지 나온 일, MBC 기상캐스터 고(故) 오요안나씨에 대한 국회 청문회는 안 열리는 일, 오만과 요르단도 못 이기는 한국 축구의 무기력함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4연임 성공, 새만금 잼버리 파행을 나 몰라라 하던 전북이 서울을 제치고 2036 올림픽 유치 후보지로 뽑힌 일, 전투기가 민가에 폭탄을 떨어뜨린 사고…. 그저 “이해할 수 없어요”라는 말밖에 안 나온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판결 내용을 여러 번 곱씹어 봤는데도 ‘정치인의 거짓말이 단순한 의견 표명일 뿐’이라는 판사의 해석만큼은 도통 이해하기가 버겁고, 이런 판사를 못 만나 허위 사실 공표죄로 처벌받은 정치인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 ‘걸리버 여행기’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가 “법이란 거미줄과 같아서 작은 파리는 잡아도 말벌은 찢고 지나가게 한다”고 했던 격언처럼, 170석 거대 야당의 수장인 이 대표는 항소심을 무죄로 찢고 차기 대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한낱 신문 기자인 나는 종교재판에 회부된 뒤 억지로 천동설을 인정했지만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했던 갈릴레이처럼 다만 홀로 읊조릴 뿐이다. “이해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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