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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에게 더 많이 걷고, 누구에게나 많이 주겠다는 국민연금 개혁안을 볼 때마다 뉴질랜드 복지 제도를 다룬 ‘이기적 세대(Selfish Generation?)’라는 책이 떠오른다. 복지와 조세 영역에서 특정 세대의 독주가 어떻게 비롯됐고,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잘 보여주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저자인 데이비드 톰슨은 뉴질랜드 사회복지가 1930년대생의 이해관계에 맞춰 시작됐고,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30년대생은 결혼 적령기엔 가족수당, 살 집이 필요할 땐 주택수당, 은퇴할 땐 연금제도가 도입됐고 강화했다. 나이가 들어 필요 없어진 복지제도는 가차 없이 축소했다. 그들이 고소득자 대열에 합류한 1980년대에는 누진적 소득세 제도를 대폭 손봐 세금 부담도 낮췄다.

이들이 복지와 조세 제도를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건 먼저 다수였기 때문이다. 또 그들의 사회 진출 시기와 경제 성장 시기가 맞물리면서, 삶의 질 개선 의제의 주도권도 잡을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뒷감당은 젊은 세대의 몫이었다. 톰슨에 따르면 1930년생은 평생 번 소득의 20%를 세금이나 사회보험료로 내고 37%만큼의 혜택을 받았다. 1955년생의 경우 낼 돈은 소득의 29%로 폭증했고, 혜택은 27%로 급감했다.

한국에서 ‘x86’이라 불리는 60년대생 대졸자들은 뉴질랜드 30년대생과 비슷한 역할을 해왔다. 먼저 2010년을 전후해 활성화된 복지 의제의 핵심 지지 집단이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고소득자였지만 자산 축적 규모는 작았고, IMF 사태를 겪으며 사회적 리스크에 취약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자녀 양육에 뒤따르는 부담을 줄여주고, 국공립 보육 시설을 만들어 주는 정책이 집중적으로 도입됐다. 60년대생이 장노년이 되자 문재인케어 등 건강보험이 강화됐다. 반면 이 세대가 가장 손해를 보게 될 국민연금 개혁은 은퇴를 몇 년 앞둔 시기까지 계속 미뤄지다, 50대 대기업 부장이나 초급 임원에게 가장 유리한 방안으로 낙착됐다. 청년들이 연금 개혁안에 반발하는 건 당장의 세대 간 부담의 불균형 때문만이 아니다. 몇 년 뒤 다시 논의될 ‘개혁안’에서 확정적으로 부담이 뛸 게 뻔해서다.

조세 정책도 비슷한 양상이다. 이재명 전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정치인이 공세적으로 감세론을 꺼내는 건 대통령 선거 승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2010년 30·40대-고소득-저자산이었던 주력 지지층이 이제는 중장년-고소득-고자산 집단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금융 소득, 부동산 보유, 상속 증여에 뒤따르는 세금을 낮춰주는 데 민주당의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게 된 것이다.

60년대생의 이해관계가 바뀌면서 세대 간 동맹 관계도 변했다. 반값 등록금 같은 의제로 젊은 세대를 끌어들이던 방식은 불가능해졌다. 상위 10% 안에는 너끈히 드는 장노년 상위 중산층을 위한 정책을 중심으로 수혜 대상을 고령자와 자산가로 넓히겠다는 행보가 이어지는 이유다.

문제는 보수 정당이다. 입으로는 ‘86 청산론’을 외치지만, 정책 의제는 별 차이가 없다. 의제만 보면 고령 자산가들만 신경 쓰는 게 그들의 사회경제 정책 실상이다. 오죽하면 명문대 로고가 새겨진 야구 점퍼를 입은 젊은이들을 화동(花童)으로 쓴다는 냉소가 나올까. 그 냉소의 결과는 여론조사 수치로도 확인된다.

대선 두 달 전인 2022년 3월과 지난주인 4월 2주 차 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60대는 탈(脫)보수 현상(국민의힘 지지율 52%→36%)이 뚜렷하고, 20~30대는 보수·진보를 모두 꺼리는 무당층 유권자(20대 32%→39%, 30대 22%→ 28%)가 늘었다.

불만에 찬 청년층을 우군으로 삼고 싶다면 어떻게 이 세대 간 불균형을 끝낼지 명확히 밝혀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노후 문제는 세대 간 재분배가 아니라 세대 내 재분배로 해결해야 한다고 선언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예 젊은 세대에 경제와 복지 문제의 방향타를 넘기는 것도 방법이다. 진심으로 ‘이기적 세대’를 이기고 싶다면 기득권부터 내려놓을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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