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렸을 때 시골에 살았어.” 국어 시간에 내가 이렇게 말하니 은우가 “샘, 저도 시골 살아요” 한다. 갈남 마을에 산단다. 처음 듣는 동네 이름이었다. 얼마나 시골이니 물었더니 “가게라고는 작은 수퍼 하나예요” 한다.

/일러스트=김도원

며칠 뒤, 갈남에 가보았다. 삼척 원덕읍에 있는 작은 바닷가 마을이었다. 185명이 살고 있다 하니 마을의 규모를 알겠다. 동네 초입새에 ‘갈남 슈퍼’가 있다. 은우가 말했던 단 하나의 수퍼.

갈남 마을. 만나자마자 좋아졌다. 햇살 환한 오월이었는데, 바다가 연두와 하늘색 섞은 옥빛이었다. 바다만 보다가 마을을 떠나도 아쉽지 않을 아름다움이었다. 야트막한 담장이 연이은 동네 골목을 조심스럽게 걸었다. 행여 외지인이 남 사는 모습을 힐끔거리는 것이 볼썽사나울까 싶어서였다.

돌아오는 길에 은우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만 알고 싶을 만큼 갈남이 예쁘더라.” 은우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갈남이 지나친 관광지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름이 되면 여행 온 사람들이 밤마다 폭죽을 터뜨려서 동네 어르신들이 잠을 못 주무셔요.” 누군가의 여행지는 누군가의 일상 공간인 것이다.

은우는 갈남에서 귀한 아이다. 갈남항에 사는 185명 중 20세 미만은 7명에 불과하다. 50세 이상이 141명이다. 한국 사회의 여느 시골과 다를 바 없는 쓸쓸한 현실이다. 은우의 마음에도 바다가 있다. 어려서부터 오빠들과 다이빙하고 성게 잡으며 놀던 바다, 학교 가는 길에 만나던 바람과 짠내, 바다에서 구한 해산물로 요리해 먹은 음식, 이런 것이 은우 마음에 켜켜이 쌓여 은우만 아는 바다가 되었다. 은우가 더 귀하게 여겨지는 까닭이다.

“갈남은 겨울이 예뻐요.” 은우의 말이다. 마을 앞바다 ‘큰섬’에 하얗게 눈이 쌓이면 예쁘다고 한다. 올겨울 눈이 펄펄 내리는 날 나는 갈남에 갈 거다. 흰 눈이 바다에 닿자마자 스르르 녹는 시간을 기다릴 테다. 그러고 보니 은우 이마가 갈남 바다를 닮았다. 그렇게 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