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맛우유를 좋아한다. 온탕에 몸 지지고 나와 마시는 바나나맛우유는 진미다. 어른이 되면 맥주를 마실 줄 알았다. 아직도 어릴 때 먹던 바나나맛우유를 마시고 있다. 아버지와 함께 대중탕에서 먹던 추억 때문이기도 하다. 빙그레는 출시 이후 한 번도 단지 모양 용기를 바꾸지 않았다. 패키징을 새롭게 하고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사라진 제품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시라. 정말이지 한 수 위를 내다본 복고 마케팅이다.

바나나맛우유를 마시다가 좀 더 근원적인 존재론적 고민에 빠져들었다. 바나나맛우유에서 우리가 먹는 바나나 맛은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바나나맛우유를 바나나 맛이라며 마신다. 바나나 수입이 자유화된 건 1991년이다. 바나나맛우유가 출시된 건 1974년이다. 한국의 많은 세대는 바나나보다 바나나맛우유로 바나나 맛을 배웠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생각한다. ‘왜 바나나에서는 바나나맛우유 맛이 안 나지?’

인터넷을 뒤지다 어쩌면 바나나맛우유 맛이 바나나 맛이 맞는 걸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캐번디시종이다. 1960년대까지 인류는 그로미셸종 바나나를 먹었다. 그로미셸이 전염병으로 거의 멸종하자 대체 품종으로 선택된 것이 병에 강한 캐번디시다. 지금은 극소수 농장만 생산하는 그로미셸은 맛과 향이 압도적으로 뛰어나다고 전해진다. 인공 제품에 쓰이는 바나나 맛 감미료가 그로미셸에 기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바나나맛우유는 그로미셸을 경험한 세대가 내놓은 마지막 진짜 바나나 맛 제품일지도 모른다.

이건 진정한 시간여행이다. 많은 별은 이미 죽었다, 폭발했다, 사라졌다. 빛은 수억 광년을 여행해 오늘 당신의 망막에 과거의 행성이 남긴 불꽃을 비춘다. 우리는 1960년대 거의 멸종한 바나나를 웬만해선 맛볼 수 없다. 다만 바나나맛우유를 마시며 바나나의 사라진 역사를 혀끝으로나마 배우는 것이다. 오늘도 꾸역꾸역 마신 단백질 보충제에 옛 바나나를 갈아 넣었다면 얼마나 더 맛있었을까 불평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