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그룹 ‘영파씨’가 지난달 20일 낸 노래 ‘XXL’은 1995년에 갓난아기나 코흘리개 정도 나이만 아니었다면 단번에 알아챌 비트가 고막을 때린다.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 4집에 실린 히트곡 ‘컴백홈(Come Back Home)’을 오마주한 것. 발표 6일 만에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 수 1000만 건을 넘어섰다. 컴백홈은 서태지에게 ‘문화 대통령’이란 수식어를 붙여준 노래다. ‘자, 이제 그 차가운 눈물은 닦고 컴백홈~’ 하는 가사를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가출 청소년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지난 1월엔 걸그룹 에스파가 ‘시대유감’을 리메이크했다. 이 곡 역시 서태지와 아이들 4집에 실려 가요 사전심의제 철폐를 이끌어 낸 역사적인 노래다.

2015년 콘서트 실황 음반을 끝으로 음악적 동면(冬眠)에 들어간 서태지를 소환한 것이 올해만 벌써 두 번째다. 노래를 부른 이들 대부분은 2000년대생으로 서태지의 시대를 살아보지도 않았다. 이들의 ‘서태지 향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1992년에 데뷔해 1996년 초 해체한 서태지와 아이들은 K팝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프로토(proto·원형) 타입이다. 작사와 작·편곡, 연주, 제작까지 일체를 서태지가 주도하며 역대 어떤 K팝 그룹보다 자유롭게 활동했다. 반면 지금의 K팝 그룹은 10대 때부터 기획사 시스템에 종속돼 합숙 훈련을 받고 몇 년씩 준비해 데뷔한다. 격렬한 댄스와 랩 정도만 닮았을 뿐, K팝 그룹의 원형과 현재의 모습은 성격 자체가 달라졌다.

원형에 대한 동경의 정서가 작동하고 있는 것 아닐까. 최근 배꼽티 같은 세기말 패션과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좋거든요)’라고 행인이 얘기하는 1990년대 방송 영상이 2000년대생 중심으로 유행한 것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7년 계약을 두고 소속사와 줄다리기하는 요즘 K팝 그룹과 달리 3년여 활동 뒤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헬기를 타고 날아가버린 서태지와 아이들의 스토리. 이 ‘도시 전설’은 자로 잰 듯 똑같이 판에 박힌 모양의 그룹들만 찍어내는 현재의 K팝 시스템이 계속되는 한 두고두고 소환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