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막을 내린 통영국제음악제에 다녀왔다. 음악도 듣고 풍광도 즐기고 살도 찌우는 시간이었다. 음악제가 열리는 시기 통영엔 벚꽃이 피고 도다리쑥국이 밥상에 오른다. 다도해 풍경에 눈이 즐겁고 충무김밥, 굴 요리, 다찌(통영식 술상)에 입도 흡족했다.
축제 기간 펼쳐진 공연엔 귀가 즐거웠다. 베르트랑 샤마유의 피아노 독주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스무 개의 시선’(메시앙 작곡)은 2시간 동안 벽력같은 타건을 펼쳤다. 디오티마 콰르텟의 쇤베르크와 야나체크 연주는 합이 좋은 록 밴드의 전성기 공연을 떠올리게 했다.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의 압도적 음향과 더해져 근사한 포만감을 안겨줬다.
가장 신선했던 무대는 ‘밴쿠버 인터컬처럴 오케스트라(VICO)’의 공연. 캐나다 밴쿠버에서 2001년 창단한 악단이다. ‘인터컬처럴(inter-cultural)’이란 말 그대로 문화권 경계를 넘나들었다. 솅·얼후 같은 중국 악기와 비올라·클라리넷·플루트 같은 서양 악기가 어우러지고 우드·타르·산투르 같은 중동 악기가 다리 역할을 맡은 악단의 구조가 신묘했다. 배음·미분음·불협음을 마음껏 사용한 현대음악적 상상력이 흡사 영화 ‘박물관은 살아있다’의 장면들처럼 입체적인 음을 자아냈다.
그러나 이토록 충실한 기획, 충만한 연주에도 아쉬웠던 건 음악제 내내 공연마다 어림잡아 30~50%씩 발생했던 공석이었다. 실험적 현대음악과 클래식을 주조로 하는 음악 축제는 국내에서 특히 대중성이 낮다. 유럽에선 ‘아시아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란 극찬을 받아온 이 음악 축제에 정작 국내 관객들은 오지 않는 것이다. 수도권에서 멀고 KTX 역이나 공항 같은 직통 교통편이 없다는 지리적 핸디캡도 있다. 그러나 임윤찬·조성진의 공연을 보기 위해 피케팅과 지방행을 마다 않는 한국 클래식 팬의 열기와 기동성,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축에 속하는 우리 클래식 팬층의 평균연령까지 고려하면 ‘이게 최선인가’란 생각이 들었다.
애호하는 축제가 한가하니 유유자적 즐기기엔 요즘 말로 ‘꿀’이었다. 그래도 내년에는 축제를 즐기는 벗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최근 해외 유수의 음악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원정 관람객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국내의 좋은 음악 축제도 봄의 정경과 함께 발굴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