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개원 72주년을 맞은 감사원 역사에서 재임 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원장은 많지 않다. 율곡사업과 평화의 댐 감사를 진행하면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겨눴던 이회창 전 원장(15대)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런데 최재형 원장이 이 전 원장 못지않게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그는 지금 탈원전과 감사위원 인선과 관련해 여권의 파상적 공세를 맞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을 좌우할 월성 원전 감사 결과 발표가 임박하자 여권의 공격은 도를 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최 원장이 탈원전 정책에 부당한 선입견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장으로서 적격을 떠나 평생 존경받는 법관으로서 생활해온 게 맞는지 의구심까지 든다” “그런 식으로 일하려면 나가서 정치를 하라”고 비난했다. 일부에선 ‘탄핵하자’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3년 전 최 감사원장 청문회 때 여당의 태도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당시 여당 의원들은 최 원장을 향해 “신뢰받는 정부를 실현해나갈 적임자”라고 했다. “미담 제조기”라는 찬사도 쏟아냈다. 지금은 ‘최재형 저격수’로 나선 백혜련 의원은 “자료를 준비하다 보니 칭찬해드릴 부분이 굉장히 많은 것 같다”고 했다. 감사원의 정치적 독립성에 관한 당부 발언도 있었다. 우상호 의원은 “감사원같이 중요한 감찰기관은 강골 공무원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며 “내가 옷을 벗을지언정 부당한 지시나 압력은 이겨내겠다는 공직자가 많아야 국민이 믿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 원장이 현 정부에 불리한 감사 결과를 발표할 것 같자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를 180도 바꾼 것이다.
여당의 양이원영 의원은 정부를 비판했던 최 원장 부친의 과거 인터뷰, 언론사 고위 간부인 동서의 칼럼까지 들고나왔다. 지난해 조국 사태 때 “연좌제가 조국을 죽이기 위해 125년 만에 부활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아내 정경심 교수 의혹을 철통 방어했던 게 지금 여당이다.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 최 원장 가족들의 과거 발언과 글까지 들먹이며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여당 일각에선 최 원장을 향해 “대통령이 임명했으면 시키는 대로 하라”면서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향과 맞지 않으면 사퇴하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 헌법과 법률 그 어디에도 감사원장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향에 따라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감사원이 대통령의 철학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여당 주장대로라면 감사원이라는 조직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지금 정부는 자기들이 칭찬하며 임명했던 인사들을 줄줄이 적폐로 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살아있는 권력도 엄정히 수사하라’고 당부했던 윤석열 검찰총장을 식물총장으로 만들더니 이젠 그 칼날을 최 원장에게 겨누고 있다. 여당은 감사원장을 흔들기에 앞서 3년 전 청문회 때 자기들이 했던 말부터 되새겨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