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이 지난달 공개한 새 군가 '육군, 위(We) 육군' 뮤직비디오. 육군은 "육군의 첨단 전력 '아미 타이거(Army Tiger)', '워리어플랫폼', 'AI 드론봇'은 미래 전장을 주도하기 위해 함께 싸우는 전우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밝혔다./육군

‘임을 위한 행진곡’(이하 ‘임행곡’)을 들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부르기 쉬운 4분의 4박자, 느릿한 템포, 단조(短調) 선율엔 비장한 정서가 흐른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로 시작해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까지 부르고 나면 1980년대 학생운동 시대로 달려간 듯하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도 제창된 이 노래는 한국의 진보 진영은 물론 홍콩·미얀마 민주화 세력까지 하나로 묶는 호소력을 갖는다. 시공(時空)을 초월한 보편성이다.

육군이 지난달 22일 공개한 새 군가 '육군, 위(We) 육군' 뮤직비디오/대한민국 육군 유튜브

‘임행곡’을 떠올린 이유는 최근 육군이 발표한 새 군가 때문이다. 지난달 발표한 군가 ‘육군, 위(We) 육군’은 8분의 12박자로 악보엔 쉼표와 셋잇단음표가 자주 등장한다. 따라 부르기 어려운 고난도 노래다. 40만 육군 장병이 부르라고 만든 군가가 맞나 싶다. 가사 중 ‘아미 타이거’의 ‘타이거(TIGER)’는 ‘4차 산업혁명 기술로 강화된 지상군의 혁신적 변화’라는 뜻의 영어 머리글자를 땄다고 한다. 2017년 현 정부가 발표했던 ‘100대 국정 과제’를 뜻한다. ‘워리어 플랫폼’ ‘AI 드론봇’이라는 가사에 이르면 산업통상자원부 캠페인송 같다. ‘독립군의 후예답게’라고 노래하지만 6·25 때 희생한 국군 선배들은 외면했다.

군가의 목적은 병사 사기를 높여 적(敵)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있다. ‘임행곡’처럼 가슴에 끓어오르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 육군의 군가는 교회 찬송가, 스포츠 응원가, 만화영화 주제가는 물론이고 북한의 ‘조선인민군가’ ‘수령이시여 명령만 내리시라’ 따위보다 못하면 안 된다. 그런데 육군이 발표한 새 군가엔 적은 그림자도 없다. 정부의 국정 과제를 선전하는 홍보물 같다.

군가에도 ‘임행곡’에 견줄 만큼 피를 끓게 하는 노래가 많다. ‘우리들이 가는 곳에 삼팔선 무너진다’(전우야 잘자라), ‘백두산까지라도 밀고 나가자’(진군가), ‘적군이 두 손 들고 항복할 때까지’(최후의 5분), ‘전우여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멸공의 횃불) 같은 노래들이다. 요즘 세대의 복고 취향을 고려하면 리메이크할 필요도 없이 그냥 불러도 괜찮다. 이런 군가들을 제쳐두고 굳이 3년 만에 신곡을 발표한 까닭은 무엇일까. 과거 군가들이 ‘북진(北進)’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일까. 새 군가에 대한 비판 댓글이 5000개도 넘게 달렸다.

군가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노래를 병사들에게 부르게 하느니, 차라리 ‘임행곡’을 군가로 지정하는 게 낫겠다. 군 관계자는 “그렇게 정권에 잘 보이고 싶으면, 화끈하게 ‘전우를 위한 행진곡’으로 고쳐 부르자”고 했다. 가사 중 ‘동지’를 ‘전우’로, ‘새날’을 ‘통일’로 손보는 정도면 당장 야전에서 불러도 손색이 없다. 참고로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민군이 자주 불렀던 노래는 1982년 만들어진 임행곡이 아니라 ‘애국가’와 ‘전우야 잘 자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