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인천 청라에서 일어난 ‘벤츠 전기차 화재’ 사건은 ‘원인 불명’으로 끝났다. 벤츠 전기차에서 불이 나는 영상이 전국으로 퍼져 나갔지만, 수사 당국은 단 한 명의 벤츠 관계자도 기소하지 못했다. 대신 아파트 관리소장, 소방안전관리 책임자 등만 입건해 책임을 물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역시 ‘양극과 음극이 합선되는 절연 파괴 가능성’ 등만 언급했을 뿐 과학적 인과관계는 밝히지 못했다. 단 건의 화재로 8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지만 가해자는 없는 사건이 된 것이다.
당국은 수사와 조사는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진행됐다고 했다. 실제 그랬을 것이다. 문제는 전기차와 같은 제조물의 경우 이 공정과 객관의 장막 뒤에서 창과 방패를 쥔 제조사와 조사 당국의 치열한 기술전(戰)이 펼쳐진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전기차 화재의 경우 BMS(배터리 관리 시스템)와 텔레매틱스(무선 통신 장치)를 통해 저장됐을 정보를 얼마나 확보해 분석했는지 등이 중요하다. 화재 가능성을 찾아내기 위한 재연 시험 등 역시 어떤 정보를 쥐고 있느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원인 불명’ 결과를 조사 당국이 기초적인 정보 수집부터 벤츠와 배터리사에 완패했다는 결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로 인해 피해자들은 벤츠가 사회 공헌을 통해 자신들의 피해를 구제해주길 바라야 하는 모순적 상황에 처하게 됐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제조물 관련 수사·조사는 무안 제주항공 참사 사건이다. 이는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와 경찰이 맡고 있다. 조만간 사고 엔진 2개를 엔진 제작사 분석 시설이 있는 프랑스로 보낼 예정이다.
사고 블랙박스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번 엔진 분석은 사고 상황을 복원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엔 엔진을 만든 프랑스 샤프란뿐 아니라 미국 GE, 비행기를 만든 미국 보잉, 미국 연방교통안전위(NTSB) 등도 참여한다. 179명이 사망한 사건에 따른 천문학적 민사 소송을 대비해서라도 자신의 결함은 적고 애매하게, 상대의 과실은 많이 드러나야 하는 게 모든 조사 참여자의 목표이고, 이는 냉정한 현실이다.
우려되는 건 우리의 조사 역량이다. 국내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항공 조사관은 9명뿐이다. 미국이나 프랑스, 일본 조사위의 경우 조사관 한 명이 1년에 맡는 사건 수는 1건이 안 된다. 하지만 우리는 많게는 3~4건도 쥐고 있다. 행정 인력도 부족해 조사관이 조사뿐 아니라 행정 업무도 함께 본다고 한다. ICAO(국제민간항공기구)가 항공 사고 조사를 사고 발생일로부터 1년 이내에 완료하라고 권고하고 있지만, 우리는 도저히 이를 맞출 형편이 안 되는 셈이다. 사람이 없으니 연구나 교육 기능이 부족한 건 또 다른 악순환이다.
이러니 무안 참사 원인 규명 역시 우려할 수밖에 없다. 피해자는 분명히 존재하는데 사고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면, 정부는 그때 가서 뭐라고 변명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