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빌라촌. /연합뉴스
서울 한 빌라촌 모습.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통해 전국 빌라의 3.3㎡당 월별 중위 매매가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의 중위 매매가는 2천38만원이다. /연합뉴스

“힘들겠지만 인내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기꾼이 작심하고 달려들면, 피하기가 힘듭니다. 철저하게 체크해도 당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법조계에선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찾아왔을 때 이렇게 말합니다. “힘들겠지만 인내심을 가져라.”

일반 소송에 비해 승소가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정작 소송에서 이겨도 피해금을 돌려 받기까진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아서입니다. 특히 대출을 낀 목돈을 한 순간에 잃어버린 피해자들은 소송이 이어지는 동안 생활고도 함께 버텨야 합니다.

업계에 따르면 전세보증금 반환 소송 평균 소요 비용은 전세금 2억원 당 440만~550만원. 세부 비용은 로펌이나 변호사 명성에 따라, 전세금 규모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적지 않은 돈을 피해 구제를 위해 추가로 써야 하는 것이죠.

소중한 목돈과 소송비용, 그리고 시간. 헛되게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세 사기 당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할 일, 그리고 당하기 전 했으면 좋았을 일. 법무법인 건우 임영근 변호사와 함께 알아봤습니다.

법무법인 건우 임영근 변호사 /본인 제공

◇전세사기 소송의 시작은 ‘계약 해지 통보’부터

- 전세사기 사실을 알았을 때 가장 먼저 뭘 해야 할까요?

“전세보증금반환 소송의 첫 시작은 계약 갱신 거절을 통보하는 것입니다. 계약 기간이 끝났는데도 돈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소송의 이유가 생기는 거니까요.

가장 좋은 것은 내용증명으로 더이상 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집주인에게 통보하는 것이고, 문자나 카커오톡 등으로라도 계약 갱신을 거절했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집주인 연락이 안 닿는다면 부동산 중개인과의 통화나 문자메시지 등으로 계약이 끝났다는 것을 확보해두면 좋습니다.”

- 소송에 돌입하기 좋은 골든타임이 있나요?

“당연히 사기 사실을 인지한 순간 바로 들어가는 게 가장 좋고요. 계약 기한 만료 6개월에서 2개월 전 계약 해지 의사를 통보할 때부터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해 관련 증거를 수집해 두는 게 좋습니다.

특히 집주인이 연락이 안될 때, 집주인 세금 체납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을 때는 조금 더 빨리 조치를 취할 수도 있습니다.

첫째는 ‘의사표시의 공시송달제도’를 활용해 계약 해지 통보를 했는데 집주인이 아무런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기록을 남겨두는 방법도 있습니다.

둘째는 전세계약서에 반드시 들어가는 집주인의 수선 의무를 활용하는 거에요. 누수 등 중대 하자가 발생했으니 수선해달라는 내용증명을 여러차례 보냈는데 답이 없다, 임대인의 의무를 져버렸으니 계약 해지 요건에 해당한다고 증명하는 것이죠. 다만 수선 기간을 당장 하루, 이틀 내로 기재하면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최소 10일에서 2주 정도 충분한 기간을 두고 요청했다는 기록이 인정되기 쉽습니다.”

- 소송 전 확인하거나 미리 준비해야 하는 서류가 있나요?

“앞서 말한 계약 해지 관련 기록과 전세계약서, 임차인 주민등록 초본, 전세금 지급 영수증이나 계좌이체 확인서 등이 있으면 좋습니다.

특히 전셋집과 관련된 권리분석을 정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입신고 날짜와 확정일자, 집에 걸려 있는 채권 순위 등이죠.”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 전세보증금 반환 소송 기간은 보통 얼마나 걸리나요?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소송은 정말 빨리 진행돼도 6개월 정도 걸립니다. 길면 1년까지도 보셔야 합니다. 우선 소장을 접수한 뒤 답변서 제출 기한이 30일 주어지고, 변론기일 잡는 시간까지 더하면 첫 재판 열리기까지만 2~3개월이 훌쩍 지나갑니다. 이후 한 두 번 재판 공방이 오고가면 6개월이 금방 지나갈 수 있어요.

다만 집주인이 잠적 상태라서 아무런 이의 신청을 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재판은 한 달 안에 빨리 끝날 수도 있습니다. 집주인이 소송 과정에서 답변서를 제출 않을 경우 재판부가 곧바로 선고 기일을 잡아 원고 청구 취지를 그대로 인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보증금 지급명령 신청도 집주인이 2주 이내 이의 신청을 하지 않으면 법원은 그대로 확정해 명령을 내립니다.”

- 승소하면 돈은 바로 받을 수 있나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법원의 지급 명령이 떨어져도 집주인이 돈이 없다고 버티면 경매를 통해 집을 처분해야 돈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소송을 전담할 변호사나 로펌을 구할 때는 꼭 ‘승소 후 경매 절차’까지를 모두 포함해 법률 상담을 받고, 선임료를 논의하시는 게 좋습니다. 사실 소송 과정보다 경매 과정에서의 법률 대처가 더 어렵고,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 최근 전세사기는 집주인이 세입자 몰래 명의를 바꿔 전세금을 떼어 먹는 경우도 많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새로 바뀐 임대인의 경제력이 충분치 않을 때, 임대인 변경을 거부하는 해지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전 집주인에게 보증금 반환 청구도 가능하죠. 단, 임대인이 몰래 변경된 사실을 인지 한지 한 달 이내에 빨리 해지권을 행사하는 게 좋습니다. 이후에는 인정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런 피해를 방지하려면 번거롭더라도 등기부등본을 자주 확인하는 게 좋습니다.”

◇당하고 보니 꼭 했어야 했던 일들

- 전입신고와 확정일자 등 전세사기에 대비하기 위해 꼭 챙겨야 할 사항은 무엇인가요?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는 반드시, 꼭, 계약 당일 모두 해야 합니다. 전세보증금 문제가 생겼을 때 법적 해결의 기준점이 되는 게 바로 이 날짜이기 때문입니다. 전입신고는 세입자가 돈을 돌려받을 순서를, 확정일자는 돈을 돌려받을 권리 자체를 인정하는 대항력을 보장해준다고 보시면 됩니다.

전세보증금 문제가 자주 생기는 이유 중 하나가 확정일자와 전입신고를 하는 당일, 혹은 직후에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일이 생기는 겁니다. 확정일자는 신고 당일이 아닌 다음날 0시 기준으로 대항력이 생기기 때문에 그 이전에 누군가 근저당권을 설정하면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이 후순위로 밀릴 수 있는 것이죠.

세입자는 전세계약서를 쓸 때 반드시 ‘계약 일주일 이내 추가 부담이나 소유권 이전 설정을 하지 않는다’는 특약을 기재하는 것이 좋습니다. 요즘은 세입자의 전입신고 당일 가짜 주인에게 소유권을 이전해버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니까요.”

- 이밖에 전세사기 피해를 막거나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신다면?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불가능하거나 전세가가 매매가에 육박하는 집은 피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등기부등본과도 친해지실 필요도 있어요. 계약 당일만이 아닌 전입신고 후 최소 일주일 이내, 계약 만기 전 6개월 전 쯤엔 세들어 있는 집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계약 당일 만큼은 전체 과정을 녹음하는 것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아래 내용을 특약으로 넣어달라고 요구하시는 게 좋습니다.

‘임차인은 전입신고 및 잔금 지급후 일주일 이내에 전세보증보험가입을 진행하기로 하고 임대인은 이에 적극 협조한다. 만약 전세보증보험에 가입되지 않는 경우 본건 계약은 무효로 하고 기지급한 보증금을 즉시 반환한다. 위 전세보증보험가입이 완료될 때 까지 소유권이전, 근저당설정 및 일체의 권리설정을 하지 않기로 한다’

계약서를 쓸 때 보통 ‘전세보증보험 가입에 임대인이 협조한다’는 내용만 기재합니다. 예전에는 이 특약으로도 피해를 막을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이를 악용하는 사례들도 종종 생기고 있습니다.

다음 사모당에선 실제 전세사기 피해 경험담을 웹툰으로 그린 작가 ‘루나파크’의 인터뷰가 공개됩니다. 자신이 직접 체감한 생생한 전세사기 피해 대처 과정, 그리고 여기서 체득한 좋은 집 고르는 법 등을 함께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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