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엔 대학 안에도 경찰이 상주했다. 대학 밖에서도 경찰이 학생들 앞을 가로막고 수시로 ‘불심검문’을 했다. 학생증을 보여줘도 가방 속까지 샅샅이 뒤졌다. 생리대가 들어있는 손지갑을 털린 여학생은 모욕감에 눈물을 쏟았다. 과잉 검문에 항의하는 학생들은 ‘닭장차’로 불리던 경찰 버스 안으로 끌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 마구잡이 불심검문에 대해 비판이 쏟아졌다. 신체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 등 국민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불심검문의 요건과 한계를 엄격하게 정한 경찰관 직무집행법이 1989년 시행됐다. 불심검문 대상은 이미 범죄를 저질렀거나 곧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로 제한된다. 경찰은 자기 신분증을 꺼내 소속과 이름을 먼저 밝혀야 한다. 불심검문을 당하는 국민은 경찰의 질문에 답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이를 어긴 불심검문은 불법이며 해당 경찰관은 최대 징역 1년까지 처벌받을 수 있다.
▶민주화 30년이 지났지만 1980년대식 불심검문을 연상케 하는 일들이 광복절인 지난 15일 서울 곳곳에서 벌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광복절 행사가 열린 서울역 주변에서 일부 경찰관들은 시민들에게 신분과 행선지를 물었다. 가방 속 소지품을 확인하기도 했다. 광화문역 주변 회사에 가던 어느 직장인은 500m쯤 이동하는 동안 “어디 가느냐”고 묻는 경찰을 5번 만났고 그때마다 신분증을 보여줘야 했다고 한다. 비슷한 일은 16일에도 있었다. 광화문역 인근을 걸어가는 70대 남성에게 경찰이 “어디로 가시는지 말씀해달라”고 했다. 이 남성은 “경찰이 아무 근거 없이 나를 집회 참석자로 의심한 것”이라며 “5공화국 때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했다.
▶경찰은 서울 도심에 버스 543대로 차벽을 둘러 ‘재인 산성’을 쌓았다. 지하철 출구도 봉쇄했다. 어렵게 출구를 찾아 밖으로 나와도 횡단보도가 철제 펜스로 막혔다. 70대 여성 2명이 경찰에게 “길 건너 약속 장소에 가려면 도대체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하소연하는 걸 봤다.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수준이다.
▶광복절 불심검문은 코로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인터넷 기사에 ‘사회 안전을 명분으로 시민 자유를 제한하는 논리는 전두환도 써먹던 방식, 전두환 타도하자던 너희들 아니냐, 알면서 하는 게 더 나쁘지’라는 댓글이 달렸다. 문재인 정권의 핵심부의 586 정치인들은 1980년대식 불심검문 피해자들이었다. 자기들이 되살려놓은 30년 전 방식 불심검문을 뭐라고 변명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