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대학 다니던 형이 방학 때 시골집에 오더니 노래를 가르쳐줬다. 김민기의 ‘아침이슬’이었다. 중학생 귀에 그 노래는 정서적 충격 그 자체였다. 특히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하는 구절은 전기 감전 같았다. 그때까지 배웠던 노래는 동요, 건전가요, ‘맹호부대 용사들아!’ 하는 월남전 참전 노래, 그리고 어른들 노래를 따라 부르던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 같은 게 전부였다. 그런데 태양이 묘지 위에 타오르다니.
▶대학에 들어가니 전혀 다른 노래 세상이 펼쳐졌다. 김민기 한대수 양병집 같은 저항 가수들 노래를 거의 다 외웠다. 특히 김민기 노래 ‘금관의 예수’에서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곤욕의 거리...’를 읊조릴 때면 숭고한 비장미에 몸을 떨었다. 한대수의 ‘물 좀 주소’도 애창곡이었다. 그리고 엊그제 별세한 양병집은 ‘소낙비’ ‘서울 하늘’ 같은 노래로 불온한 영혼들을 사로잡았다.
▶운동가요에도 온건 서정파가 있고 격렬 전투파가 있다. 70년대와 80년대는 분위기도 크게 달랐다. 그러나 원조 격인 서유석 양희은 같은 가수를 민중가수로 부르기엔 망설여진다. 그냥 시대를 이끌었던 가인일 뿐이다. 어떤 집회 때 마이크 앞에 섰다고 해서 민중가수라고 자격증을 주는 것도 아니다. 공식 분류가 있을 턱이 없다. 때론 서정적인 노래가 더 ‘혁명적’으로 쓰일 때도 있다. 민중가요와 ‘날라리 노래’를 넘나든 가수도 많다.
▶김민기 노래 중 ‘늙은 군인의 노래’는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 년’으로 시작한다. 전투적 민중시인인 김남주가 생전에 김민기에게 항의했다고 한다.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내 청춘...’ 같은 대목이 너무 패배적이라는 것이다. 이 노래는 3년 전 현충일에 추모곡으로 쓰였고, 최백호가 불렀다. 한때 군의 사기 저하를 이유로 금지곡이었는데, 이제 공식 행사장에서 불리다니 세상 변한 걸 실감한다.
▶TV조선 프로그램 ‘내일은 국민가수’가 엊그제 ‘제1대 국민가수’ 박창근을 뽑고 막을 내렸다. 그런데 과거 그가 몇몇 집회에 참여했다 해서 논란이 됐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누구 편도 아닌 노래의 편입니다.” 맞는 답변이다. 그가 무슨 ‘개념 연예인’ 행세를 한 것도 아닐 것이다. 연전에 김민기는 한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의도나 계획을 갖고 (곡을) 만드는 체질이 아닙니다.” 그는 ‘세월호’ 노래를 만들어 달라는 청도 사양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