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신분을 속이고 범죄 조직에 잠입해 수사하는 것은 영화의 단골 소재 중 하나다. 홍콩 영화 ‘무간도’는 젊은 경찰 사관생도(양조위 분)가 경찰 학교에서 쫓겨나는 것처럼 위장해 폭력 조직 삼합회에 침투하는 내용이다. 이 경찰은 10년 동안 폭력 조직에서 생활한 후 경찰로서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기 시작하면서 갈등을 겪는다.
▶국내에서도 2013년 이정재가 주연으로 출연한 ‘신세계’, 2017년 설경구가 주연을 맡은 ‘불한당’ 등 경찰이 위장 수사에 뛰어드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이런 위장 수사를 ‘언더커버(undercover)’라고 하는데, 같은 이름의 영화가 있을 정도다. 범죄 조직에 경찰이 위장 잠입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영화의 좋은 소재다.
▶실제로 외국에선 적극적으로 위장 수사를 허용한다. 마약에 시달리는 미국이 대표적이다. 미국 법무부는 위장 수사 대상 등을 제시하는 ‘언더커버 가이드라인’을 두고 있다. 중남미 마약 조직들은 미국 위장 잠입 수사관 명단을 확보하려 노력했다. 미국은 마약은 물론 음란물, 화이트칼라 범죄, 부패 범죄, 테러, 조직 범죄, 마약 범죄 등에도 위장 잠입 수사를 활용하고 있다. 연방수사국(FBI)은 2015년 아동 성범죄자를 잡기 위해 직접 아동 음란 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독일은 1992년 조직범죄대책법을 만들어 위장 수사 제도를 시행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경찰이 위장 수사를 할 수 있는 분야가 제한적이다. 범인 검거에 효과적이지만 자칫 역효과를 일으키고 국민 인권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상 경찰이 위장 수사를 하면서 범죄 의도가 있는 이에게 범죄 기회를 제공하는 정도는 적법, 범죄를 저지를 생각이 없는 사람의 범행을 유도한 정도라면 위법이었다. 그 기준이 모호해 현장 수사관들이 위장 수사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도 ‘n번방’ 사건을 계기로 2021년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위장 수사를 허용했다. 경찰은 법 시행 이후 4년간 위장 수사 500여 건으로 피의자 1415명 검거하고 94명을 구속했다. 지난해 11월엔 딥페이크 등 성인 대상 디지털 성범죄까지 위장 수사 범위를 넓혔다. 정부가 이번에 마약 범죄에 대해서도 수사관이 가짜 신분으로 수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허용 범위가 디지털 세상이었다면 현실 세계로 넓어졌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마약 문제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위장 수사 범위를 보이스피싱 등 금융 사기 범죄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