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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상훈

1982년 ‘단군 이래 최대 금융 사기’로 불렸던 이철희·장영자 어음 사기 사건이 터졌다. 중앙정보부 출신 전직 국회의원과 결혼한 장씨는 이순자 여사 삼촌의 처제였다. 권력의 배경에 메이퀸을 지낸 미모와 지성. 그야말로 사기 치기 딱 좋은 스펙이었다. 대통령 친인척이 연루된 당시 정부 예산의 10% 수준인 6400억원대 사기 사건이었다. 이순자 여사는 자서전에서 “남편이 자신감을 얻고 있던 시점에서 날벼락같이 찾아온 사건”이라고 회고했다.

▶장영자 사건에 당대 최고 검사들이 투입됐다. 대검 중수부장이었던 이종남은 훗날 법무장관, 감사원장을 지냈고 이명재, 정홍원, 박주선, 안대희는 나중에 검찰총장, 국무총리, 국회의원, 대법관을 지냈다. 사실상 대검 중수부의 첫 사건이었던 장영자 사건을 통해 대통령 처삼촌 등 32명이 구속됐다. 민심 수습 차원에서 국무총리와 안기부장, 그리고 11명 장관이 교체됐다.

▶그러나 시중에는 장영자가 사기 친 돈이 “이순자와 관련 있다” “민정당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이른바 ‘영부인 리스크’였다. 액수도 컸지만 38세에 세 번째 결혼인 장영자의 미모와 개인사가 더 화제였다. 그녀는 구속되면서 “경제는 유통 아니냐”며 사기가 아닌 경제 활동임을 강조했다. 당시 드라마의 대사 ‘민나 도로보데스(모두가 도둑이다)’와 맞물려 사회 현상이 됐다. 1985년 총선 때 야당은 “장영자와 이순자”를 부각시켰고 결과는 신민당 돌풍이었다. 5공 붕괴가 여기서 시작됐다.

▶장씨는 81세인 지금까지 인생의 절반을 교도소에서 지냈다. 차용금 사기, 구권(舊券) 화폐사기 등 대부분 사기였다. 구속 기간만 33년. 최근 위조수표 사용으로 다섯 번째 구속됐는데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면 모두 34년을 복역하게 된다. 장씨는 교도소에서도 자신의 명예회복(?)에 관심이 많았다. 2004년 한 정치인이 대통령 친인척이 연루된 645억원 펀드 의혹을 거론하며 “제2의 장영자 사건”이라고 하자 명예훼손 소송을 냈다. 그녀의 패소였다.

▶2022년 네 번째 출소 후 장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재심을 통해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고 했다. 대학 졸업 후 방송국에서 영어 프로그램 대담자로 일하다 중정에 발탁돼 특수훈련을 받았고, 이후 중정 위장회사에 일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두 번의 이혼 모두 결혼이 아니라 반강제 혼인신고였다며 시골에서 여생을 보내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154억 위조수표를 사용하다 또 구속됐다. 사기도 경험이 필요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