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오후 부산 강서구 대저동 김해공항에서 홍콩행 에어부산 항공기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당국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뉴스1

1990년대 초만 해도 항공기 수하물 규제는 까다롭지 않았다. 기내 흡연도 자유로웠던 시절이라 휴대용 라이터 반입을 지금처럼 한 개로 제한하는 규정 같은 것도 없었다. 수하물 반입 규제의 주된 목적은 사고 예방과 테러 방지에 있다. 1970년대 일본 적군파와 팔레스타인의 검은9월단은 여객기 납치 테러로 악명 높았다. 무기가 될 수 있는 것들의 기내 반입을 막아야 했다. 우리도 북한의 대한항공 858기 폭파 테러 이후 여행객과 휴대품의 보안 검색을 강화했다.

일러스트=이철원

▶그래도 9·11 테러 이후와 비교하면 관대한 편이었다. 2001년 9·11 이후 특히 미국행 비행기 승객은 사생활 침해 수준의 몸수색을 당했다. 그해 12월 영국 국적의 무슬림 테러리스트가 신발 속에 숨겨 반입한 폭탄을 기내에서 터뜨리려다 미수에 그친 것을 계기로 신발을 벗어 엑스레이 검색대에 올리는 보안 규정이 추가됐다. 2006년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액체 폭탄을 음료수 병에 담아 반입하려던 시도가 적발된 뒤엔 액체류의 기내 반입도 제한됐다. 생수병을 검색대 직전 쓰레기통에 버리는 풍경이 그때 시작됐다.

▶2016년 소말리아 모가디슈 공항을 이륙한 여객기가 폭발해 탑승자 전원이 숨졌다. 조사 결과 노트북 PC 형태의 폭탄이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과 영국은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자국으로 들어오는 항공기에 스마트폰보다 큰 전자제품의 객실 내 반입을 금지하는 수하물 제한 규정을 신설했다. 승객이 과도한 규제에 반발하는 ‘수하물 분노(luggage rage)’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기도 했다.

▶설 연휴 기간 김해공항에서 발생한 여객기 화재가 객실에 반입된 보조 배터리 발화 때문일 수 있다고 한다. 이륙 전에 불이 났기 망정이지 비행 중이었다면 대형 참사로 이어졌을 수도 있었다니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보조 배터리에 주로 쓰이는 리튬 이온 전지는 충격을 받으면 화재 위험성이 커서 짐으로 부칠 수 없고 객실 반입만 허용됐다. 불이 나면 즉시 끄기 위한 안전 조치다.

▶그러나 리튬 이온 전지는 발화하면 삽시간에 섭씨 2000도까지 온도가 치솟는 열폭주 현상을 일으킨다. 한번 불이 나면 물을 뿌려도 소화가 안 되는 속수무책 상황에 빠지기 십상이다. 보조 배터리 위험성이 새삼 주목받으면서 배터리를 객실 내 짐칸에 따로 두지 말고 몸에 지니게 하는 등 규정을 더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안전한 여행을 위해 여행객이 불편을 참는 지혜도 필요하다. 보조 배터리는 집에 놓아두고 여행지에서 사거나 임차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