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군포는 김연아 선수가 학창 시절을 보낸 곳이다. 2010년 김 선수가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자 군포시는 5억2000만원을 들여 관내 철쭉동산 공원에 8m 높이의 조형물을 만들었다. 조형물 꼭대기에는 피겨스케이팅을 하는 여성상을 올렸다. 그러나 동상이 김 선수와 전혀 닮지 않았고, 김 선수와 전혀 상의하지 않고 동상을 무단 제작한 것이 밝혀졌다. 이 때문에 군포시는 ‘김연아’라는 이름을 동상에 쓰지 못했다.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이다.

일러스트=박상훈

▶지자체가 엉터리 행정으로 망신을 당하고 주민 세금을 낭비한 케이스는 이것만이 아니다. 서울시는 2014년 한강변에 영화 ‘괴물’에 등장하는 괴물을 재현한 조형물을 설치했다. 높이 3m, 길이 10m 크기로, 1억8000만원이 들었다. 그러나 이 조형물은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아 결국 2024년 철거 결정이 내려졌다. 경북 고령군은 2015년 대가야의 기상을 기린다며 6억5000만원을 들여 투구를 쓴 말머리 모양 7m 크기의 청동 조형물을 제작했다. 그러나 흉물스럽다는 민원이 이어지자 한적한 농촌문화체험장으로 옮겨놓았다.

▶부산 해운대구청은 2017년 해운대 해수욕장에 있던 세계적 설치미술 거장인 데니스 오펜하임의 작품을 일방적으로 철거한 다음 고철·폐기물로 버린 사실이 드러났다. 부산비엔날레 조직위가 국제 공모를 거쳐 국·시비 8억원을 투입해 만든 작품 ‘꽃의 내부’였다. 이 작품이 작가의 유작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해운대구청은 철거 사실을 작가 가족과 미술계 등에 알리지 않았다. 아마 뭔지도 몰랐을 것이다. 해운대구청은 뒤늦게 작가 가족에게 사과하고 작품을 복원해 2020년 장소를 옮겨 재설치했다.

▶전남 신안군이 2019년 가짜 예술가 최모씨에게 속아 DJ 고향인 하의도 곳곳에 천사상 318점을 설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신안군은 그를 ‘파리 제7대학 예술학부 명예교수’ ‘리틀 로댕’으로 소개했지만 모든 것이 허위였다. 최씨는 같은 방식으로 경북 청도군에도 접근해 중국의 조각 공장에서 수입한 작품 20점을 2억9700만원에 팔았다. 보통 예술품 사기는 유명 작가의 작품이라고 속이는 것이 일반적인데 자신이 유명 작가라고 사기를 치는 데 속은 드문 케이스다. 예술에 무지한 탓이다.

▶우리 사회에선 아직도 과학과 예술에 무지한 것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는 풍조가 남아 있다. 지자체 예술품 상당수가 시장·군수 치적용이라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의 검증이 필요할 텐데 그것도 없었다. 신안군과 청도군이 세금으로 사들인 ‘작품’들을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이것을 ‘예술품’으로 본 안목이 놀라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