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일러스트=박상훈

공중폭격은 2차 대전 때부터 본격화했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 때 미군 폭격기의 첫 폭격 연기가 미군 진영으로 흘러왔다. 뒤따르던 폭격기가 연기를 목표물로 오인해 폭탄을 쏟아부으면서 미군 중장을 포함한 240여 명이 사망했다. 아군과 적군이 근접한 지상 전투에선 ‘아군을 죽이는 오인 사격’(friendly fire)이 잦았다. 하지만 2차 대전 당시 공중폭격엔 그런 개념 자체가 부족했다. 아예 민간인 대량 살상을 목표로 한 ‘전략폭격’이 횡행했기 때문이었다. 폭탄으로 카펫을 깐다는 ‘융단폭격’, 도시 블록을 날려버린다는 ‘블록버스터’가 폭격 전술이었다.

▶2차 대전 막바지 영국 공군이 덴마크의 독일 게슈타포 근거지를 공습한다. 전투기 한 대가 대공포를 피해 저공비행을 하다가 수녀원이 운영하는 학교에 추락하자 그 화재를 보고 폭격기들이 게슈타포 기지로 오인, 폭탄을 투하했다. 어린이만 80여 명이 사망했다. 이 비극은 영화 ‘폭격’으로 만들어졌다. 베트남 전쟁 때까지 항공 폭탄은 중력으로 떨어지는 ‘멍텅구리’ 폭탄이었다.

▶1991년 걸프 전쟁에서 항공 폭탄의 역사가 완전히 바뀌었다. 정밀 유도폭탄이 등장한 것이다. F-117 스텔스기가 떨어뜨린 유도폭탄(GBU-10) 한 발이 목표물에 정확히 명중하는 장면이 TV로 생중계됐다. 멍텅구리 폭탄에 GPS 유도장치를 붙인 ‘합동 직격탄(JDAM)’도 대량으로 등장했다. 융단폭격이 아닌 ‘외과 수술식 타격(Surgical Strike)’이 가능해졌다. 이때부터 지상의 오인 사격과 공중 오폭을 막기 위한 첨단 피아 식별 장치들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코소보 전쟁이 한창이던 1999년 미군 공군기가 옛 유고 주재 중국 대사관을 폭격했다. 중국인 3명과 현지인 14명이 즉사했다. 미국은 “오폭”이라며 “좌표 입력을 잘못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당시 중국 대사관이 추락한 미 스텔스기 잔해 일부를 입수해 은닉 중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스텔스 기술 유출을 막으려는 고의 폭격 아니냐는 의혹이 컸다. 당시 미국 주도의 WTO(세계무역기구) 가입에 목매던 중국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그제 우리 공군 전투기 2대가 훈련 중 민가에 폭탄 8발을 떨어뜨렸다. 한국 공군은 세계적 수준으로 평가받는데 이런 어이없는 사고가 났다. 급박한 전쟁터에서 오폭은 많았지만 평시 훈련 중에 민간인 지역을 때리는 공중 오폭은 희귀할 것이다. 공군은 우리 군 최고, 최대의 억지력이다. 각성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안용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