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후반 조선 정조 때, 인삼 장기 보관법을 찾는 과정에서 인삼을 쪄서 말린 홍삼이 개발됐다. 붉은색으로 변하면서 쓴맛은 빠지고, 단맛은 강화된 홍삼은 청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조선 무역상 임상옥은 1821년 청나라 상인들이 홍삼 가격을 후려치려 불매운동을 벌이자 홍삼 3000근(1800㎏)을 불태우는 시위로 청 상인들을 제압했다. 홍삼은 조선 사신단이 와야 볼 수 있는 귀한 물건이었기에 이런 벼랑 끝 협상술이 통했다.
▶조선 초기 중국으로 가는 사신단을 수행한 역관들은 산삼 80근(48kg)을 경비로 받았다. 산삼을 중국에서 비단, 책 등으로 교환해 고수익을 내는 ‘역관 무역’이 성행했다. 18세기 들어 산삼이 귀해지면서 밭에서 재배한 가삼(家蔘)으로 대체됐다. 가삼의 부가가치를 높인 홍삼이 발명되자 조선 왕실이 민간 무역을 금지했다. 하지만 개성 상인들은 홍삼 밀수출로 큰돈을 벌었다. 밀수출 홍삼엔 ‘잠삼(潛蔘)’이란 별칭이 붙었다.
▶대한제국 황실은 홍삼 무역권을 장악하기 위해 인삼 수확철이 되면 개성 일대에 군대를 보내 잠삼을 단속했다. 황실은 홍삼 수출을 일본 미쓰이 물산에 맡겼고, 1945년 해방 때까지 미쓰이 물산이 우리나라 홍삼 수출을 독점했다. 1948년 정부 수립 후엔 홍삼 전매권이 재무부로 넘어갔다. 1996년에야 전매제가 폐지되면서 민간인도 홍삼을 자유롭게 제조·판매할 수 있게 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홍삼을 ‘건강기능식품 2등급’으로 분류하고 있다. ‘임상 시험 결과가 있지만 효과가 완전히 과학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식약처에서 인정하는 홍삼의 효능은 사포닌 성분에 의한 것이다. 피로 해소, 혈액순환 개선, 면역력 증진, 기억력 개선, 항산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의 업계에선 “홍삼이 백삼(그냥 말린 인삼)보다 효능이 좋다는 주장은 근거를 찾기 어렵고, 판매자들의 마케팅 전략이 만든 이미지”라는 말도 있다.
▶미국의 유명 여성 래퍼가 “한국 홍삼을 먹고 나면 (몸이) 완전 깨어 있는 느낌이 든다”며 홍삼을 극찬하는 영상을 소셜미디어(SNS)에 띄웠는데, 조회 수가 100만을 넘어설 정도로 화제다. 과거엔 홍삼의 주 수출 시장이 중국, 일본이었는데, 2015년 미국 코스트코 입점 이후 K푸드 열풍과 더불어 미국인들의 홍삼 사랑이 높아지고 있다. 래퍼가 매일 먹는다는 홍삼 음료 제품의 대미 수출은 1년 새 116%나 늘었다. 200년 역사의 홍삼 무역이 제2의 전성기를 맞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