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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부터 페르시아·인도에 이르는 광대한 땅을 정복했지만 정복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마음이었다. 그가 28세 때 페르시아를 정복한 다음 부하들과 만찬을 함께 할 때 심복 중 한 명이 교만하지 말라고 직언했다. 격분한 왕은 위병의 창을 빼앗아 심복을 향해 던졌다. 창은 가슴을 관통했다. 왕은 곧바로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며 사흘 밤낮을 방에서 나오지 않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요즘으로 치면 분노 조절 장애를 의심해야 할 일이다.

▶서울 한 아파트에서 불을 지른 용의자가 숨지고 주민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60대 방화 용의자가 윗집 주민과 층간 소음 갈등을 겪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분노 조절 장애를 겪었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뿐 아니라 인터넷에 ‘홧김에’라는 단어를 치면 방화, 차량 돌진, 우발적 칼부림 같은 분노 폭발 범죄 사례가 쏟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간 뇌의 앞부분 전두엽은 충동 억제, 감정 조절, 판단 등 고도의 기능을 담당하며 사람을 사람답게 해주는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 전두엽에 이상이 생기거나 기능이 약해지면 분노 같은 감정 신호를 적절히 제어하지 못하는 분노 조절 장애가 생긴다. 대구 한 대학 병원 간호사가 신생아를 돌보며 “분조장(분노 조절 장애) 올라오는 중”이라는 표현을 쓰다 파면당한 후 ‘분조장’이 유행어처럼 되기도 했다.

▶미국의 한 남성이 1848년 공사장에서 쇠막대기가 머리를 관통해 한쪽 전두엽이 없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생명엔 이상이 없었지만 온순한 성격이 분노를 참지 못하는 성격으로 변했다. 유전적인 요인, 호르몬 이상, 과도한 스트레스 등이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노년에 기억력은 문제없는데 불같이 화를 내는 성격 변화가 나타날 때 진단하는 ‘전두엽 치매’도 같은 종류의 장애다. 분노 조절 장애로 치료받은 사람은 2020년 1800여 명에서 2023년 2200여 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정신과 진료를 기피하는 풍토를 고려하면 환자는 훨씬 많을 것이다.

▶순간적으로 치미는 분노를 어떻게 제어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부정적 감정이 정점을 찍고 한 단계 내려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15초라고 했다. 일단 자기만의 분노 신호를 알아둔 다음, 신호가 나타나면 3초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말고 12초 동안은 심호흡을 하면서 참으면 일단 급한 불은 끌 수 있다고 했다. 15초가 분노를 가라앉히는 ‘골든타임’인 셈이다. 그래도 안 된다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