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학병원 내과 병동에는 야간에 내과 의사가 없는 날이 많다. 통상 내과 전공의가 돌아가면서 병동 당직을 서지만, 의사가 부족하다. 여성 전공의 한 명은 출산 휴가 중이다. 병실 입원 환자를 돌보는 입원 전담 의사도 부족하여, 낮에만 근무한다. 교수들이 야간 온 콜(on-call) 당직을 서며 처치를 내리지만, 응급 상황에 취약한 상태다. 명색이 대학병원인데, 야간에는 무의촌이 된다.
흔들리는 ‘내·외·산·소' 필수의료
의료계에서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는 필수의료 진료과로 분류된다. 진료과 이름 앞 글자를 따서 내·외·산·소는 메이저(major)로 불린다. 그만큼 ‘내외산소’가 환자 생명을 살리고 중병을 고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그런 필수의료가 의료진 부족, 중증 질환 기피, 자부심 추락, 낮은 의료 수가 등으로 흔들리고 있다.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로 병원들이 지쳐가는 사이 필수의료 인프라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병동 환자 처치 의사 부족 현상은 내과 전공의 수련 기간을 4년에서 3년으로 줄이고, 전공의 주 80시간 근무가 적용되면서 수년 전부터 예견됐다. 이에 각 병원이 입원 전담 의사를 구하려고 했으나, 3교대 야간 근무, 월급 격차 등을 이유로 내과 의사들의 지원이 많지 않았다. 김영균 내과학회 이사장은 “입원 전담 의사를 둔 병원이 전국에 36개밖에 없고, 필요 인원의 10%(249명) 정도만 확보돼 있다”며 “병원에 내과 의사가 없다 보니 응급실에 오는 환자의 52%가 심장, 호흡기 등 내과 전문 진료 증상임에도 제대로 처치가 안 되거나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내과 세부 전공을 선택하는 전임의 과정에서 내시경 시술로 개업 하기 좋은 소화기내과에 전체의 33%(139명)가 몰렸다. 암 치료를 하는 혈액종양내과에는 30명, 코로나를 진료하는 감염내과는 29명에 그쳤다. 필수의료 안에서도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충남의 한 대학병원은 지원자가 없어 췌장·담낭 분야 외과 교수를 2년째 뽑지 못하고 있다. 논문과 수술 건수 등 조교수 요건을 갖춘 젊은 외과 의사가 적기 때문이다. 이우용 외과학회 이사장은 “전공의도 없는 상태에서 야간 응급 수술도 하고 논문도 써야 하는데 누가 외과 교수를 하려고 하겠느냐”며 “특히 지방 의대는 빈자리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한 해 신규 외과 전문의 수는 2009년 212명에서 올해 143명으로 줄었다. 그 사이 수술 수요가 많은 암 환자는 18만여명(2008년)에서 24만여명(2020년)으로 늘었다. 한 해 의사 배출이 2000여명이던 1990년대에 신규 외과 의사는 200명을 넘었다. 지금은 의사 배출이 3300여명 수준인데도 150명이 안 된다. 의사를 늘려도 외과 기피가 해결되지 않으면 외과 의사 수는 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우용 이사장은 “현재 50대 외과 의사들이 은퇴하는 10년 후부터는 그나마 있던 외과 의사가 수술실을 대거 떠나면서 수술 대란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외과학회 실태 조사에서 외과 의사 50%가 “다시는 외과를 안 하겠다”고 응답했다. 외과 수술 행위 156개 중 149개가 외과 수술에 주는 가산율 30%를 줘도 원가에 못 미치는 의료 수가를 받고 있다.
산과·소아과 중증 환자 볼 의사 부족
요즘 밤에 대학병원 응급센터에 가면, 소아과 의사 진료받기가 힘들다. 아예 “○○시 이후에는 소아과 의사가 없다”고 써 붙여놓은 대학병원도 있다. 그 시간 이후에 응급실로 실려오는 경련 발작 아기도 응급의학과 의사가 보고 끝낸다. 지난해 소아과 전공의 지원율이 30%대 떨어지면서 야간 응급 진료에 나설 소아과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교수들이 번갈아 가며 당직 콜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보건복지부에서 소아 전문 응급센터로 지정받은 병원 9곳도 소아과 의사 부족과 설비 미비 등으로 4곳이 중도 탈락하고 현재 5곳만 운영되고 있다. 소아 전용 중환자실을 운영하는 대학병원이 서울에서도 절반 정도다. 나머지는 어른 중환자실서 병상 몇 개를 빌려 쓰고 있다. 지난해 소아 감염, 심장, 신장, 중환자 관리 분야를 전공하겠다고 나선 소아과 의사가 전국적으로 한 명도 없었다. 은백린 소아청소년학회 이사장은 “병원 소아과 진료의 95% 이상이 건강보험”이라며 “국가 의료보험 정책을 잘 따르는 필수의료과가 손해보고 불이익을 받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분만 인프라가 절반 이상 사라진 산부인과는 새로운 고민에 직면하고 있다. 산부인과 외래에 임신 관리를 받으러 오는 산모들 대부분이 초산임에도 30대 중·후반이다. 전체 출생 건수는 줄었지만, 고위험·고령 산모는 되레 늘어났다. 35세 이상 산모가 2009년에는 전체의 15.4%이던 것이, 2019년에는 33.4%로 늘었다.
그만큼 고위험 분만을 처리할 숙련된 산부인과 수요는 늘었지만, 신규 산부인과 의사 배출이 매년 110명 안팎에 그치면서, 고위험 산모를 처치할 조교수급 교원이 급감했다. 향후 10년간 조교수급 산부인과 의사가 54% 줄어들 전망이다.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의 베이비붐 세대 의사들이 줄줄이 은퇴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고위험 산모 진료가 부실해지면서, 분만 의료 수준을 나타내는 모성사망비(신생아 10만명당 임신이나 분만 관련 산모 사망률)는 9.9로 OECD 회원 36국 중 24위다. 분만 사고로 인한 의료 소송 배상액은 1억~3억원에 이른다. 이필량 산부인과학회 이사장은 “일본처럼 무과실 분만 사고에 대한 배상은 정부가 해야 한다”며 “주요 거점 모자보건센터와 분만병원으로 지역 고위험 산모들이 모이게 하는 공공 이송 체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우용 외과학회 이사장은 “필수의료 분야 의료 수가가 정상화되어야 하겠지만, 이 분야 의사들이 국민 생명을 지킨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