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인형을 꼭 끌어안고 낮잠을 잔다. 신나게 놀다 잠들었는지 분홍빛 뺨에 웃음이 남았다. 이 아기의 이름은 마리 프란치스카 폰 리히텐슈타인.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의 작은 나라 리히텐슈타인 공국의 공주다. 12세기에 일어난 리히텐슈타인가(家)는 1719년 신성로마제국에서 공국으로 독립한 이래 가문명을 국가명으로 유지하고 있다. 서울시 면적의 4분의 1도 안 되는 소국이지만 막대한 부를 소유한 대공 가문이 국가 예산 전체를 부담하기 때문에 국민은 납세 의무가 없고, 중립국으로서 군대가 없으니 병역 의무도 없다. 덕분에 리히텐슈타인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도 국민 대다수의 사랑을 받으니, 이 아기야말로 진정한 동화 속 공주님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리는 대공 알로이스 2세의 열한 자녀 중 맏이였다. 알로이스 2세는 마리를 시작으로 아이들이 두 돌 즈음이 될 때 오스트리아 화가 프리드리히 폰 아메를링(Friedrich von Amerling·1803~1887)에게 초상화를 의뢰했다. 당시 폰 아메를링은 오스트리아 황실 화가로서 유럽 각국의 왕족으로부터 초상화를 주문받았고, 나중에는 작위를 얻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는 인물을 미화하면서도 성정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데 탁월했다.
폰 아메를링의 초상화 중에서도 이 작품은 백미로 여겨진다. 위에서 비스듬히 얼굴을 내려다보는 구도는 막 아기를 재우고 침대에 조심스레 앉아 아기를 바라보는 어른의 시선이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두 돌배기를 키우는 이라면 아무리 천하의 공주님이라도 잘 때가 제일 예쁘다는 말에 동감할 것이다. 물론 아기 얼굴은 미화의 기술 없이 있는 그대로 그려도 꽃잎처럼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