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5월인데 올여름 장마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계기는 일본 기상청의 때 이른 장마 발표였다. 지난 5월 11일 일본 기상청은 규슈 지역에 장마가 시작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65년 만에 가장 빠른 장마다. 물론 ‘일본 장마’(梅雨·바이우)는 한국의 장마와 성격이 다소 다르다.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현상은 아니다. 이 점에서 우리나라도 평소보다 빠른 장마를 겪을 수 있다는 우려는 단순한 기우는 아니다.

세계 최초 강수 관측망 만든 세종대왕

‘비’는 농경사회에서 생명과 같은 존재였다. 백성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왕들도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 예를 굳이 먼 옛날 다른 나라에서 찾을 필요는 없다. 조선왕조실록에 이미 비에 대한 흥미롭고 놀라운 기록들이 남아있다. 세계 최초로 강수 관측망을 구축한 사람이 바로 세종대왕이다. 물론 이전에도 전세계 곳곳에서 강수량을 측정한 기록이 있다. 그러나 표준화된 강수 측정을 전국적으로 시행한 것은 세종대왕이 최초였다. 세자 시절 문종이 다른 관료들과 함께 개발한 측우기를 세종대왕은 지방 관아로 내려 보냈고 비가 올 때마다 강수량을 측정해서 보고하게 했다.

1911년 1월 과학잡지 ‘네이처’를 통해 국제 학계에 공개된 조선 측우기.

측우기가 실제 농업 발전에 활용됐는지는 불분명하다. 어쩌면 왕이 농사에 그리고 백성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선전하기 위해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혹은 세금을 공평하게 걷기 위한 기준으로 측우기의 강수량을 이용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조대왕 이후 수백년간의 강수량 관측 자료는 동아시아 고기후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1911년 과학잡지 ‘네이처’ 지면을 통해 국제 학계에 공개된 측우기<사진>는 여전히 세계 최초의 우량 관측기로 인정받고 있다. 측우기와 측우대는 현재 국보 329·330·331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서양에서 우량 관측기가 제작된 것은 세종대왕 사후 무려 200여년이 지나서였다. 세종대왕 재위 시기 유럽은 과학의 암흑기를 보내고 있었다. 마녀를 소탕한다는 명분 하에 평범한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처형되었고, 과학자들조차 일상적으로 종교재판소에 불려 다녔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에서는 국왕이 직접 마녀 재판을 주재하기도 했다. 거기에는 영국과 스칸디나비아 사이의 바다, 북해의 변덕스러운 날씨가 큰 영향을 끼쳤다. 마녀 재판이 절정으로 치닫던 16세기 말,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잉글랜드왕 제임스 1세이기도 함)는 덴마크의 왕녀를 신부로 맞이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신부가 타고 오던 배는 북해의 강한 돌풍을 만나 노르웨이 해협까지 밀려나게 된다. 돌풍에 만신창이가 된 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철 이른 눈 폭풍까지 불어 닥쳤다. 결국 신부와 살아남은 병사들은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로 피신하게 된다. 다급한 마음에 제임스 6세가 직접 신부를 찾아 나섰지만, 부부가 상봉한 것은 한 달이나 지나서였다. 끊임없이 배를 뒤흔든 폭풍우 때문이었다.

제임스 6세는 당시 유럽을 휩쓸던 마녀 광풍에 다소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녀가 만들어낸 것만 같았던 위협적인 폭풍우를 직접 경험하고 나서 마녀의 존재를 믿고 주장하게 되었다. 어린 신부가 여왕이 되는 것을 싫어한 마녀가 폭풍우를 만들었다는 것 이외에는 자신의 경험을 딱히 설명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양 강수 관측망 시작은 19세기 중반 이후

마녀가 날씨를 조종한다고 믿었던 중세 암흑기가 끝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비는 과학적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19세기 중반, 영국에도 강수 관측망은 만들어진다. 흥미롭게도 최초의 강수 관측망은 국가기관이 아니라 기상학자 조지 시먼스(1838~1900) 개인의 노력으로 구성되었다. 시먼스는 날씨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모아 협회를 만들었다. 일종의 동호회였다. 회원들은 매일 강수량을 측정해 1년에 한두번 관측 자료를 취합했다. 협회가 1860년 발간한 보고서에는 500여 곳에 이르는 관측 지점 자료가 포함되었다. 이 관측망은 15년 후에 2000여 곳으로 확대된다. 그러나 시먼스가 수집한 강수 자료는 일기예보에 직접 활용되지 못했다. 실시간으로 취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기 예보와 계절 전망의 한계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도 강수 관측망이 구성됐다. 남북전쟁으로 인해 좌절된 관측망을 기상학자 클리블랜드 애비(1838~1916)가 자발적인 참여자들을 모아 구성한 것이다. 매우 제한적인 정보였지만 그가 수집한 날씨 정보는 일간 기상도로 제작되었다. 그의 일기도는 오대호를 항해하는 선박들에 상당히 유용한 정보를 제공했다. 이후 미국의 기상 관측망은 군 주둔지를 중심으로 확대되면서 현대적인 관측망이 구성되게 된다.

강수 관측 기술은 지난 수세기 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근래에는 인공위성과 레이더 등 첨단 장비가 활용된다. 그럼에도 측우기와 비슷한 형태의 원통형 우량계는 여전히 비를 감시하고 예측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장비로 이용되고 있다.

10~30일 강수 예보 가장 어려워

강수 예보는 수백년간 강수 관측의 산물이다. 그러나 신뢰할 만한 강수 예보는 여전히 어렵다. 세계적으로 강수 예보는 보통 3일로 국한된다. 10일 예보도 있지만 정확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그렇다 보니 10일~30일 이상 강수 예보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흥미롭게도 겨울철 전망에 중요한 엘니뇨는 3~4개월 전 예보가 가능하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10~30일 이상 예보를 단기 예보와 계절 전망 사이의 ‘틈’이자 ‘한계’로 인식하고 있다.

세계기상기구는 2010년 계절내·계절(10일~60일) 예측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도 10일 이상 예보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비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데 수백년이 필요했던 것처럼, 강수 장기 예보는 또 다른 10년 혹은 100년이 필요할지 모른다.

올여름 비가 많이 올까? 아니면 적게 올까? 무책임하게 들리겠지만, 전문가의 대답은 ‘모른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