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다음 주면 도쿄 올림픽이 열린다. 여러 논란에 거부감도 크지만, 올림픽 자체는 인류가 추구할 가치를 보여주는 축제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시대정신을 공유하는 문화 행사이고, 천문학적 비용도 마다하지 않는 개막식은 오래도록 기억되곤 한다. 이런 점에서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은 과학기술의 의미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했다.

런던 올림픽 개막식은 한 신사가 셰익스피어 ‘템페스트’의 한 구절을 낭독하며 시작한다. 셰익스피어 전문 배우이자 영화 ‘토르’의 감독으로 잘 알려진 케네스 브래나가 분장한 이 신사는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Isambard Kingdom Brunel)’. 우리에겐 낯설지만, 브루넬은 가장 위대한 영국인 순위에서 윈스턴 처칠에 이어 2위에 오를 정도로 셰익스피어와 뉴턴만큼 존경받는 인물이다. 영국이 영국을 상징하는 인물로 내세운 브루넬은 19세기 산업혁명을 이끈 엔지니어였다.

일러스트=백형선

1829년, 갓 스무 살을 넘긴 독일의 천재 음악가 멘델스존이 런던을 방문한다. 처음 타보는 증기선으로 영국에 도착한 그는 유럽 최대 도시 런던에서 버스를 처음 보았으며,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만들어 낸 멋진 신세계에 놀라고 또 감탄했다. 멘델스존은 이처럼 새롭고 신기한 것들이 가득한 영국을 좋아했다. 짧은 인생에서 그는 10여 차례 이상 영국을 방문했고, 체류 기간은 20개월이 넘는다. 영국인들 역시 늘 독창적인 음악을 들려주는 멘델스존에게 열광했다.

멘델스존은 평소 존경하던 셰익스피어의 희곡으로 만든 ‘한여름밤의 꿈’을 런던의 지식인 모임에서 연주했는데, 여기서 또래 엔지니어 브루넬을 만난다. 같이 연극도 하고, 음악도 하며 급속히 친해진 두 사람의 공통분모는 셰익스피어였다. 방 하나를 셰익스피어 작품들로 가득 채울 정도로 셰익스피어에게 심취했던 브루넬은 어느 날 멘델스존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며 템스강에 데려갔다. 당시 브루넬은 템스강 하저를 뚫고 지나는 거대한 터널을 건설 중이었다.

멘델스존은 템스강 터널 공사의 엄청난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연약 지반이던 템스강 아래를 굴착하기 위해 브루넬은 ‘실드(shield) 공법’을 최초로 개발했다. 오늘날 수많은 토목공사에 응용되고 있는 이 공법으로 터널이 완성되자, 사람들은 세계 8대 불가사의라 불렀다. 브루넬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교량 기술이다. 기존 공법으로는 불가능했던 절벽 사이를 연결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의 철제 현수교를 개발한 것이다.

새로운 음악을 추구하던 멘델스존과 마찬가지로 혁신의 아이콘이던 젊은 엔지니어 브루넬 또한 거침이 없었다. 이번에는 철도를 맡아 수많은 한계를 극복하며 단숨에 수백 마일의 철도망을 완성한다. 다음에는 대서양을 횡단할 수 있는 초대형 증기선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더 나아가 영국에서 호주까지 단숨에 갈 수 있는 증기선까지 추진한다. 터널을 뚫고, 다리를 놓으며, 철도를 건설하고, 증기선을 만든 것은 티켓 하나로 세계 여행을 하겠다는 브루넬의 거대한 꿈이었다. 그의 상상력이 사람들을 움직였고 세상을 바꾸었다.

1853년 크림전쟁에서도 브루넬이 활약한다. 철도와 증기선으로 대량 병력 수송이 이루어지고, 산업혁명이 가져온 무기의 발달로 수십만명이 사망한다. 참혹한 인명 피해의 전장에 나이팅게일의 호소로 영국 정부는 야전병원을 추진한다. 이 프로젝트를 브루넬이 맡았다. 그는 전투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해 조립식 모듈 형태의 건축을 고안한다. 그의 노력으로 소독과 위생 관리가 가능한 병원이 탄생하고, 영국군 사상자가 급속히 줄어들자 이후 모든 병원이 브루넬 방식으로 지어졌다.

엔지니어(engineer)는 원래 타고난 재능을 뜻하는 라틴어 ‘인제니움(ingenium)’에서 유래했다. 천재 ‘지니어스(genius)’와 독창성 ‘인제뉴어티(ingenuity)’와 같은 어원으로, 현재 화성 탐사에서 활동 중인 드론 이름이 인제뉴어티다. 고대 로마부터 투석기나 기중기 같은 창조적인 발명품을 엔진(engine)이라 하고, 엔진을 만드는 사람을 엔지니어라 불렀다. 어원을 생각한다면 아이폰과 같은 스마트폰도 엔진이다. 요컨대 엔지니어는 예술가처럼 기존의 사고를 거부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크리에이터(creator)’를 일컫는 말이다. 이런 혁신을 보여준 진정한 천재가 바로 엔지니어 브루넬이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과학과 기술, 그리고 산업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은 아마 엔지니어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한 것일지 모른다. 여전히 문·이과를 나누고, 다시 순수 학문과 실용 학문으로 나눈다. 융합 사고가 더욱 절실한 현실에서 이런 분리로 얻는 이익은 찾기 힘들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 영감을 얻은 소설 ‘멋진 신세계’는 기술 문명의 어두운 미래를 그린 것 같지만, 오히려 작품에서 돋보인 것은 감성과 이성이 결합했을 때 빛나는 인간의 매력이다.

멘델스존과 브루넬의 관계에서 보듯이 엔지니어는 예술가와 같은 길을 걷는 크리에이터였다. 예술적 감성으로 무장한 엔지니어 브루넬은 과학이 인간과 조화될 것으로 믿었기에 기술의 미래를 낙관했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와 반발은 이미 이때부터 있었지만, 이에 대한 해답은 런던 올림픽에서 브루넬이 낭독한 ‘템페스트’의 구절이 충분히 말해주고 있다. “두려워 마라(Be not afe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