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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化門에 가려면 마들에서
노원을 지나 중계 지나 하계 지나
공릉 지나 태릉 지나 먹골 지나
상봉 지나 면목 지나 사가정 지나
용마산 지나 중곡 지나
君子에서 오호선 갈아타야 한다
往十里 지나 행당(杏堂) 지나 靑丘 지나
東大門 지나 乙支路 지나
鐘路를 지나가야 한다
入門하는 길이 이렇게 멀다
-천양희(千良姬·1942∼)
이렇게도 시가 되는구나. 그 독창적인 착상에 감탄했다. 어떤 직유도, 심오한 개념어도 없다. 슬픔과 기쁨을 표현하는 단어도 없다. 장소를 나타내는 명사가 20개. ‘지나’가 여러 번 나온다. 감정 중립적이고 차가운 시어들. 그러나 내가 읽은 천양희 선생의 어떤 시들보다 뜨거운 인상을 남긴 시.
이 시를 쓰던 당시 시인은 상계동의 아파트에 살았다. 2005년 겨울이었을 게다. 내 시집 <돼지들에게>에 추천사를 얹어주신 천양희 선생과 전화 통화를 하며 집 이야기를 많이 했다. 새집 도배를 직접 하셨다는 말을 듣고 나는 놀랐다. 그 힘든 도배를 혼자 하시다니. 중년을 지나 노년에 접어든 시인에게 지하철을 갈아타고 역 24개를 지나 광화문에 이르는 길은 때로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이었으리.
어느 날 천양희 선생님의 자화상 같은 시. ‘君子’의 깊은 뜻을 독자들은 알리. ‘入門’은 문에 들어가는 것. 넓고 빛나는 광화문에 들어가는 일. 주변에서 중심에 이르는 길이 이렇게 멀다.